▲연세대학교 언더우드홀연세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세연넷>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화제다. 연세대학교 내에는 실제로 '학벌 카스트'가 존재할까
연세대학교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연세대학교 내에 '학벌 카스트'가 존재한다는 <한겨레21> 1018호 <"감히 연세대 동문 동문 거리는 놈들…">기사가 온라인에서 연일 화제다. 기사에 따르면 입시 전형과 성적, 소속캠퍼스와 단과대에 따라 같은 연세대학교 내에서도 일종의 계급이 정해진다고 한다. 온라인 상에서는 다수의 누리꾼들이 기사가 연세대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 내의 문제를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비상식적 차별주의자가 존재하는 현실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분명 적극적 차별주의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는 소극적 분리를 조장하는 상대적 다수도 있다. 이 다수는 언제든지 적극적 차별을 주장하는 이들로 변할 수 있다.
비록 기사에 나온 만큼 적나라한 수위의 언어는 아니지만 '조려대'(고려대학교 조치원 캠퍼스), '원세대'(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 등의 '차별적' 어휘는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쓰인다. 이런 어휘 사용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고 방조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고려대학교 내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차별을 볼 수 있다. '조려대 애하고 같이 팀플(팀 프로젝트)를 했는데 X 같더라', '분교 캠퍼스 애들은 왜 이중으로 학력을 세탁하려 하느냐' 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어휘 사용은 소속 캠퍼스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편입생이나 외국인 학생과 함께 팀 프로젝트를 하기 싫다고 말하는 학생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소속 단과대가 어디인지, 어떤 전형으로 입학했는지, 어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에 따라서도 상대를 구분 짓고 차별화하려는 인식이 종종 발견된다. '상식'적인 '다수'의 학생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활개치지는 못해도,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서,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술자리 뒷담화에서 숨어 있던 담론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이 현상에서 중요한 점은 차별적 어휘를 쓰는 이들이 제한된 공간에 갇힌 소수의 '악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담론은 이제 특정 누군가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적지 않은 숫자의 '평범한' 학생들에게까지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번지고 있다.
개인의 계급을 구분하고 계급에 따라 차별그런 점에서 <한겨레21>의 기사가 "'20대 개새끼론'을 재생산한다"거나 "무고한 대학생을 악으로 규정한다"고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연넷 익명 게시판에 카스트론을 쓴 학생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학내에서 차별적 언행을 하는 사람은 많다. 옅은 층위의 분리 의식을 가진 학생은 분명히 무시해도 좋을 만한 소수가 아니다.
세연넷 익게의 유저들은 비뚤어진 시대의 자화상이다. 그들을 낳은 시대는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현대 한국 사회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생산 수단의 소유만으로 차별하는 사회가 아니다. 온갖 기준으로 개인의 계급을 구분하고 계급에 따라 차별한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개인의 학력 역시 순수한 무풍지대로 남을 수 없다. 동일한 노동을 해도 고졸이 대졸보다 돈을 덜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대학은 'SKY'를 들어가야만 한다. 고등학교조차도 특정 외고를가지 않고서는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 찍힌다. 이러한 인식이 대학 내부를 침범하고 학생들의 인식에 이끼처럼 스며들고 있다.
카스트 제도를 주장하는 이들은 '학력 자본'에 따른 계급 의식을 수용한 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학벌의식에 찌든 20대', '대학 사회를 더럽히는 더러운 미꾸라지' 정도로 치부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일베의 사례를 알고 있다. 그들의 존재를 악마로 규정하며 사건을 끝낼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이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지표'로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