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남자' 화장실을 보았다

[송준호 교수의 길거리 사회학] 치장하는 화장실

등록 2014.07.07 11:29수정 2014.07.0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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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을 둘로 나누는 방법은 대단히 다양할 것이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똑똑한 사람과 아둔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잘 생긴 사람과 못 생긴 사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과 안 마시는 사람, 흡연자와 비흡연자….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누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기가 어렵다. 분류 방법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반반씩 정확하게 나누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도 있다. 둘로 나눈다 해도 그 중간지대에 속하는 이들이 대단히 많을 수밖에 없다. 


지구상의 수십억 인구를 정확하게 둘로 나누는 방법은 한 가지뿐일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성의 경계가 모호한 이들도 더러 있긴 하다. 둘로 나누었을 때 성별 인구의 수가 꼭 같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앞서의 분류 방법에 비하면 이보다 더 정확하게 둘로 나누는 방법은 없을 듯하다.

남자와 여자로 성이 나누어지다 보니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수많은 희로애락의 대부분이 분리된 성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남자로 인해 환희와 고통을 맛보기도 한다. 여자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들도 많다. 목숨을 끊는 남자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국가간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이나 전쟁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어느 남자 화장실 표지판
어느 남자 화장실 표지판송준호

난센스 퀴즈 하나 풀고 가자. 어느 순간 남자나 여자들 중 어느 한 쪽이 지구상에서 일시에 사라졌다고 가정하자. 그런 다음 제일 먼저 없어지는 건 무엇일가. 요즘 여자들 등살에 자칫 잘못하면 뼈도 못 추리겠다고 결의한 세상 모든 남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이 지구를 떠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난센스' 퀴즈다.

자, 다시 묻는다. 남자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무엇이 가장 먼저, 혹은 동시에 없어질까. 매장이나 옷장 속에 걸린 남성복이 없어질 거라고? 천만에, 이미 만들어진 건 옷장이든 매장이든 한동안 남아 있다. 여자와 더불어 만들 수밖에 없는 아기가 없어질 거라고? 산부인과도 없어질 거라고? 그 또한 아니다. 이미 태어난 여자 아기들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답은 여자다. 까닭을 깊이 생각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여자'나 '남자'는 성을 구분하자고 만들어진 상대적 개념이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도 없고, 남자가 없으면 여자라는 명칭을 굳이 쓸 필요가 없다. 그냥 다 같은 사람일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누리는 경제적 부가 똑같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도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자와 여자의 차별성이 극명하게 적용되는 곳이 있다. 공공 사우나와 화장실이다. 일부 국가에는 남녀가 함께 이용하는 대중목욕탕도 있는 모양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야말로 일부에 불과하다. 어떤 남자는 여장을 하고 여탕에 들어갔다가 적발되어 처벌을 받기도 한다. 하긴 그러니까 변태라고 하는 것이지만….

남녀 화장실을 별도로 마련해 놓고 그걸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쓰거나 그려서 출입문에 붙이는 문자나 그림이 비주얼 시대의 흐름에 맞게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걸 '남'과 '여'로 간명하게 적었다. 요즘에야 물론 'MAN'과 'WOMAN'이 대세다.


 어느 남자 화장실 표지판
어느 남자 화장실 표지판송준호

색깔로 구분하는 곳도 있다. 그럴 때는 으레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 계열을 쓴다. 거기에 남자와 여자의 이미지를 다양한 그림이나 선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신랑과 각시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 붙인 곳도 있다. 이 경우도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MAN'이나 'WOMAN'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어떤 남자 화장실은 선 채로 오줌발 힘차게 날리는 모습을 이미지화해서 구분하기도 한다.

그림처럼 우직하게 '남자'라고 써서 붙인 화장실 표지판이 신선하게 와 닿는다. 로마자에 온갖 그림이나 세련된 이미지로 장식된 것들만 봐 와서 그런 걸까. 아니, 본질적으로는 그게 아닐 것이다. 겉만 화려하게 포장해서 눈속임을 일삼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 탓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라고만 적은 화장실 표지판
'남자'라고만 적은 화장실 표지판송준호

#남자 #여자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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