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아파트 오솔길
김종신
한참 신문을 들여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아파트 안의 작은 오솔길을 찾았다. 보통 때 같으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길. 이슬보다 더 가는 비가 내 뺨을 어루만졌다. 목적지는 아침을 해결할 국밥집. 가는 길 중간, 한 호프집 창문에 붙은 <벗을 만나>라는 시가 눈에 들어 왔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절친이었던 권필이 쓴 시다. 시의 구절구절들은 촉촉한 비와 더불어 술 마실 핑곗거리를 더했다.
벗을 만나벗을 만나 술을 찾으면 술이 날 따라오기 힘들고술을 만나 벗을 생각하면 벗이 날 찾아오지 않네한 백년 이 몸의 일이 늘 이와 같으니나 홀로 크게 웃으며 서너 잔 술을 따르네
'나 홀로 크게 웃으며 서너 잔 술을 따르네' 라는 구절을 눈에 힘을 주고 한 번 더 읽었다. 국밥집 앞 2차선 횡단 보도. 신호를 기다리면서 영화 <복면달호>의 주제곡이 떠올랐다. 왜일까.
이차선 다리 위에 마지막 이별은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이 아파와왜 잡지도 못하고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어...이차선 다리 위 끝에 서로를 불러보지만 너무도 멀리 떨어져서 안 들리네...차라리 무너져 버려 다시는 건널수 없게 가슴이 아파 이뤄질수 없는 우리의 사랑국밥집이 그다지도 그리웠나. 웃음이 났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평소와 달리 사랑을 노래할 만큼 퇴근길 졸음을 이겨낸 이 보람의 맛.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음식을 주문 하고 신문을 폈다. 펼치자마자 목마른 참새가 수돗가에서 목을 축이는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목마름을 축이기 위해 순대국밥과 함께 막걸리를 주문했다. 국밥이 오기 전에 먼저 잔에 술을 채우고 밤샘 근무를 무사히 마친 나 자신을 격려 했다. 시원한 막걸리가 목을 타고 벌컥벌컥 들어간다. 지난날의 힘겨움도 벌컥이는 소리와 함께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막걸리에 순대국 한 사발한 잔 비우고 두 잔을 시작하는 도중에 순대국이 나왔다. 당면을 넣은 순대가 아니다. 돼지 피로 속을 채운 순대가 뽀얀 사골 국물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