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흥찐빵은 국민의 찐빵'이라고 펼침 막을 내건 지난날 안흥면사무소
박도
그 첫째, 찐빵을 만드는 아주머니들에게 대우도 잘 할 뿐 아니라 소정의 제빵사 자격증을 부여하고 그분들에게 제복을 입혀 한 기술자로서 긍지를 심어주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분들이 용돈 벌기 위해, 농한기에 심심해서 찐빵가게에 나와 만든다는 의식을 불식시켜 "나는 내 고장 명품 찐빵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라고 주문했다.
그 둘째, 찐빵협회에서 품질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감시지도하며 우후죽순처럼 제멋대로 생겨나는 찐빵가게가 나오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사실 그 당시 안흥마을에만 18~19개 찐빵가게 저마다 '원조'를 내세우고 있었다. 정작 심순녀 찐빵 원조는 원조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당부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타지에서 굴러온 너는 글이나 쓰고 찐빵마을 선전이나 해 줄 거지 뭔 참견이냐고 아무도 듣지 않았다.
곧 몇 해 후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찐빵 가게 앞에는 "우리 집 찐빵은 손으로만 빚습니다" 해괴한 펼침막이 나붙었다. 그 사연을 알아보니 3개 업소가 찐빵 만드는 기계를 들여놓고 대량으로 찐빵을 생산한 모양이었다.
그때 그 모든 걸 기사화할까 하려다가 자체적으로 수습할 텐데 자칫하면 안흥찐빵 전체에 누가 될 것 같아 참고, 원주로 이사 왔다. 그 뒤 안흥에 갔을 때 우연히 한 기계찐빵 업자를 만났다. 그는 이전 나에게 '선배님'하고 따르던 이이기에 어떻게 기계로 찐빵을 만들면서 '안흥찐빵'으로 행세하느냐 나무라자 나에게 대들었다. 기계찐빵이 더 위생적이고, 인력난에다가 고임금으로 아줌마들을 구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또, 한 기계찐빵 업자는 최고급차를 타고 씽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