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세월호침몰사고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선 학부모를 지나가던 시민이 쳐다보고 있다.
이희훈
세월호 참사는 큰 슬픔이었다.
"배가 기울어지고… 어 왜 이러지… 물이 들어오네… 구해주겠지… 근데 캄캄한 밤이 되고… 누군가는 먼저 죽었을 거고… 그 시체 옆에 누군가는 살아 있었을 건데… 마지막 아이는 시체들에 둘러싸여 죽어갔을 거잖아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복받쳐 울고 있었다.
"구조를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면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실수, 교통사고 기후재난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세월호는 그게 아니에요. 태평양 공해상도 아니고 우리 앞바다에서 어떻게 한명도 못 구하냐고요. 그 진실을 밝히는 힘은 국민이 눈을 뜨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검찰이 밝혀줄까요? 아니요. 청문회가 생중계되는데도 이 모양인데…. 국민의 관심이 없으면 희망이 없는 겁니다." 4월 23일 그는 광화문으로 무작정 나섰다. '경찰이 잡아가는 거 아닐까' 내심 많이 떨었다. 맨 처음 들고 나간 피켓 문구는 이랬다. '세월호 은폐엄단 진실규명' 그러다가 '세월호 다 밝히라'로 바꿨다.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강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1인 시위의 목적은 내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공감해주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의 마음을 담았다. 이렇게. '세월호, 내 가족 우리 아이' '아이들이 끝까지 애타게 불렀을 이름, 엄마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살려 달라는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 벌써 잊으셨습니까.'
오지숙씨는 대학 때 시위 한번 안 해봤다. 사법고시 준비 외에는 다 곁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6살에 첫 아이를 낳고 지금은 오남매의 엄마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 '일상의 오지숙'은 엄마 50%, 주부 30%, 여자 10%, 이웃으로서의 나에 10%의 에너지를 분배하는 삶을 살았다. 1인 시위를 시작한 이후는? 이웃으로서의 나에 70%, 엄마 20%, 주부 5%, 여자 5%로 바뀌었다. 집은 엉망이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엄마와 주부가 내 일이고 나머지는 곁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바빴고 많이 힘들었어요. 쳇바퀴 삶에 메어 살다가 이 일을 계기로 내 아이를 잘 돌보고 공부시키는 게 다가 아니란 걸 깨달았죠. 세월호는 나에게 커밍아웃할 기회를 주었어요." 상위 10% 아이 위해 진입장벽 만드는 시험세월호 참사가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면 대한민국 교육은 아이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다고 오지숙씨는 생각한다. 그는 중1인 큰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피아노 학원, 하나 한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으면 싶어서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처음 본 전 과목 시험에서 수학 점수가 38점. 시험 문제를 살펴보니 해독이 어려웠다. 그는 소위 배운 여자다. 명문대 법대를 나왔다. 그냥 어려운 게 아니라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예 못 풀게 만든 문제라는 의도가 읽혔다.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기능인'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아이는 "이해가 안 된다"고 운다.
"아, 이렇게 수포자(수학포기자)를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재능이나 소질을 발휘할 기회 없이 사회 루저(패배자)로 만드는 환경에 아이들이 살고 있는 게 실감됐죠.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학부모 전체모임이 있어 학교생활과 관련한 안내려니 싶어서 나가봤는데 분위기는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더라고요. 문제를 어렵게 내는 이유가 자사고, 특목고, 외고를 가는 상위 10% 아이들을 위해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이더라고요. 그 자리에 100여 명의 엄마들이 왔는데 직장맘,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아이들은 아예 제외되는 거잖아요. 문제는 그 엄마들이 전체가 아닌데도 '내 아이가 이기고 내 아이만 살리는' 목소리가 크게 반영되는 구조라는 점이에요." 오지숙씨는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서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척도로 삼아왔다. 미소를 잃으면 그걸 없애주는 방식으로 균형감을 잡았다. 하지만…. "엄마 혼자서 아이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임계점이 넘어가고 있는 게 느껴져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아이를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세월호 참사가 엄마 오지숙의 문제가 된 이유다.
그의 1인 시위 이야기를 읽고 페친들이 많이 늘었다. "나는 못하는데 너는 대단하다"는 반응이 많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실망하지 않아요. 나 하나 행동하는 것에 만족해요. 내 남편도 설득하지 못하는데 누가 나랑 같겠어요.(웃음) 저에게 세월호 1인 시위는 예방접종 같아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 수 있는.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라고. 다만 저는 나와 다른 51%(박근혜 지지)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거죠. 누구나 공감하는 '엄마'의 이름으로." 세월호 기억하게 한다면 "뭐든지 다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