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데/ 비룡소/ 1999.02.09
김규영
번아웃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면, 일단 멈춰야 한다. 그렇다고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산으로 바다로 명상을 떠나야 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처럼 멈춰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혹시나 산으로 떠났다고해도,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TV나 스마트폰에 귀기울이던 일상의 탈진상태 휴식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모는 우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자신 내부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시간을 빼앗으러 온 회색신사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그가 시간도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회색신사의 말에 홀려, 최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기 시작한 마을 사람들은 일은 물론 휴식까지도 성과를 내면서 몰두하는 우리처럼 소진되고 고갈되어 결국은 병에 걸리게 된다.
"그 병은 어떤 병인데요?"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안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거야.[...]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p.329) 판타지와 동화의 형식으로 <모모>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도 '견딜 수 없는 지루함'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센 성과사회의 흐름에 맞선 멈춤의 시간이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몸이 피곤한 것인지,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인지,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낀 것인지, 일 자체의 의미를 잃은 것인지 멈춰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명상, 취미, 힐링, 인문학,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 상관없다.
'너'에게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학생과 선생, 기업과 노동자, 국민과 정부. 소통이 없고 교감이 없는 것은 서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아, 교육, 입시, 취업, 경제, 정치, 어디 하나 뚜렷한 대책이 없는 답답한 사회에 대해 사색하는 것도 귀찮고 골치아프다. 성급하게 '치료'한다고 해도 결국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성과사회의 물결에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잠시라도 멍하니 멈춰서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나와 너의 목소리를 찾아서, 온전히 증상을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회색신사의 정체까지 꿰뚫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우주와 소우주에 귀를 기울이는 모모의 모습을 소개해 본다.
"모모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있는 옛 원형극장의 둥근 마당에 혼자 앉아 거대한 정적의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곤 했다. 그러면 모모는 별들의 나라를 향해 열려 있는 거대한 귓바퀴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나직하지만 웅장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밤이면 모모는 유난히 예쁜 꿈을 꾸었다. 아직도 귀기울여 듣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모만큼 잘 할 수 있는지 한번 직접 시도해 보길 바란다."(p.32)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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