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한 판 공짜로 준다고? 무슨 속셈일까

도심 한복판 '포교원'... 할머니들 쌈짓돈 뺏는 상술 우려

등록 2014.07.17 13:47수정 2014.07.1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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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또 나오셔요. 안 끝났어요? 어제도 ○○사 가셨잖아요."
"아직 멀었어. 어제는 밥도 주고 고기에다 술도 주더라."


 포교원에서 받은 물건들을 들고 움직이는 할머니들
포교원에서 받은 물건들을 들고 움직이는 할머니들이경모

16일 아침, ○○사 포교원으로 매일 출근(?)하시는 할머니와 나눈 얘기다. 우리 가게 옆 건물 3층에 할머니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건 지난 1일. 벌써 2주가 지났지만, 할머니들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1시, 이곳을 찾고 있다.

첫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그날도 할머니 300여 명이 종종걸음으로 포교원을 찾았다. 포교원에 가기만 하면 달걀 한 판을 그냥 준단다. '와! 우리 동네에 할머니들이 이렇게 많이 사셨나' 새삼 놀랐다. 달걀 다섯 판을 가져간 사람도 있다고 한 할머니가 귀띔해준다. 가래떡, 주방세제, 화장지, 키친타올, 옥수수, 각 티슈, 밀가루, 갈치 두 마리, 조기 10마리, 설탕 한 봉지, 김치통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갈치 준다고 해놓고 오후에 또 오래. 비 맞고 여기까지 온 내가 미쳤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할머니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전달이 잘못됐나 보다. 얼마나 됐을까. 허리를 거의 펴지 못하는 꼬부랑 할머니가 가게 앞에 있는 내게 전단지 한 장을 내밀며 묻는다.

"노인정에서 받은 건데 여기 종이에 적힌 데가 어디요?"


임대 4개월 해놓고 '개원'이라고?

종이 위에는 '축 개원 여성 불자님을 모시고 ○○사를 개원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약도와 문의 전화번호도 있다. 며칠 간 머리를 맴돌던 의문이 한꺼번에 풀렸다.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많은 할머니를 한 번에 동원할 수 있었을까. 왜 할머니들, 그것도 거의 일흔이 넘는 고령의 할머니들만 모셔 오는지 궁금했다. 젊은 아주머니나 아저씨, 할아버지는 포교원에 들어갈 수 없다. 여기서 그 행태가 의심스럽다.


 할머니들이 받은 달걀
할머니들이 받은 달걀이경모

포교원(布敎院)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종교의 교리를 널리 알리고 교도(敎徒)를 모집하는 곳'이다. 그런데 성별과 나이를 못 박아 놓고 포교를 하다니. 현행법상 포교원은 물건을 팔 수 없는 곳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제1장 2조 11항에선 '사업자가 소득 기회를 알선·제공하는 방법으로 거래 상대방을 유인하여 금품을 수수하거나 재화 등을 구입하게 하는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 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음이 드러날 땐 공정거래위원회,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직권으로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고, 관계기관에서 벌금이나 과징금을 추징할 수도 있다.

"오늘은 뭘 주던가요?"

질문하는 내게 손사래를 치면서 할머니가 말한다.

"나는 오늘만 올 거여. 노래도 불러주고 웃긴 이야기도 해주니까 재미야 있는데, 곧 본색이 나오겠지. 난 낼부터는 안 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싸면서 질이 좋은 것도 거의 없다. 할머니 말씀대로 아직 크게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은 다행히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본심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축 개원'이라고 해놓고 임대는 4개월만 했다. 4개월짜리 포교원인 것. 아직 1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가족과 먼저 가신 할아버지 등의 평안을 바라는 할머니들에게 이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건물주도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미국처럼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사기를 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취득한 재산이나 수익을 법원이 몰수 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그런 포교원에 가지 않는 게 최고의 예방법이다.

 받은 물건을 싣기 위해 주차해놓은 할머니들의 유모차
받은 물건을 싣기 위해 주차해놓은 할머니들의 유모차이경모

5000원 하는 달걀 한 판을 받으려고 빗길을 달려온 할머니와 제대로 허리도 펴지 못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단지 하나로 이 곳을 찾는 또 다른 할머니. 불편한 몸으로 유모차를 끌고 온 할머니도 있다.

비가 올 듯 말 듯 찌뿌드드한 날씨다. 매일 가게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이 볼썽사납고 짜증이 난다. 할머니들을 선뜻 막지 못하는 내 마음이 마치 가뭄에 타들어가는 논바닥 같다.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악한 생각과 나의 번뇌를 다 씻겨내 줄 시원한 장맛비가 기다려진다. 장마가 끝나면, 맑고 깨끗한 자비의 햇빛이 우리 동네를 비춰 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월간 첨단정보라인 8월호에도 실립니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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