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도 더 된 여관, 이름 한번 묘하네

[서촌여행②] 백운동천길에서 만난 서촌의 거장들

등록 2014.07.21 08:15수정 2014.07.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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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22일 오전 9시 42분]

옥류동천과 청풍계천이 서촌(서울 경복궁 서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지류(支流)라면 백운동천과 대은암천은 주류(主流)다. 전자는 남북을 나누고 후자는 동서를 가른다. 백운동천과 대은암천 모두 복개되어 자하문길과 창의문길이 되었다. 그나마 겸재가 남긴 그림 <창의문>으로 물길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그림속 물줄기를 상상하면서 좇아야 하는 '상상의 길'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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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창의문> 겸재 정선의 창의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에서 왼쪽(인왕산)물줄기가 백운동천, 오른쪽(백악산)물줄기가 대은암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와 합류하는 대은암천이다. 창의문 왼쪽 언덕이 지금의 ‘윤동주시인의 언덕’이다


이 물길에 기대어 이룬 동이 청운동, 궁정동, 효자동, 통인동, 통의동, 적선동이다. 서촌의 주류답게 걸출한 대가들이 이곳에서 나거나 성장했다. 겸재, 송강이 청운동에서 태어났고 안동 김씨 중에 장동 김씨로 따로 불릴 만큼 명문대가를 이룬 김상헌 집터가 궁정동에 있다. 영조의 잠저였던 창의궁터가 통의동에, 추사가 성장한 월성위궁터가 적선동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서정주와 이중섭 등 여러 문인과 화가들이 활동했던 보안여관이 통의동에 있다. 

특히 겸재, 송강, 추사는 과거의 형식과 관념,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양식,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문예의 경지를 구축한 우리나라 문예사(文藝史)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복지(福地)와는 다른 차원의 기운, 문기(文氣)와 예기(藝氣)가 왕성하게 흐르는 곳이다.

기운이 과하면 넘치는 법, 서정주는 친일행위로 후대에 욕을 먹었고 송강은 기축옥사 책임자로 역사에 오점을 남겼으며 장동 김씨는 19세기 세도정치로 명성에 먹칠을 하였다.

백악산 봉우리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내려앉고

'상상의 길'은 '윤동주시인의 언덕'에서 시작한다. 백운동천과 대은암천이 시작되는 곳이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청운동 언덕배기에 있는 윤동주문학관. 윤동주가 인왕산 아랫동네, 누상동에서 하숙한 인연으로 여기에 문학관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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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관 하얀색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의 맑은 영혼 같다 ⓒ 김정봉


하얀색 문학관은 시인의 맑은 영혼을 표현한 것인가? 아니면 선하면서 옹골진 눈매, 어디 한 군데 악의라고는 없는 시인의 얼굴을 나타낸 것인가? 맞은편 뽀대나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시인의 언덕은 문학관 옆 계단 길로 올라간다. 언덕은 등기부등본에는 등재돼지 않은 시인의 영혼이 소유한 땅이다. 올곧게 살아온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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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시인의 언덕’ 표짓돌 이웃한 백악산을 빼닮았다 ⓒ 김정봉


문패 같은 표지석은 백악산을 옮겨다 놓은 듯 빼닮았다. 누구의 작품인지 일반조경업자의 안목은 아닌 것 같은데 언덕 앞에 서 있는 시비(詩碑)는 지나치게 커서 눈에 거슬린다. 언덕아래에서 태어나 뒷동산처럼 드나들었던 겸재가 지금 이 시비를 보았다면 틀림없이 시비(是非)를 걸었을 것이다.   

송강 정철, 서촌에서 호사를 누리고

청운초등학교 주변 어딘가가 정철이 태어난 곳이라 하는데 그를 알리는 표짓돌, 기념비와 가사비 등이 학교의 담을 이루고 있다. 우리말로 우리정서를 찾으려 했던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은 문인으로서 대접 받을 만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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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을 알리는 안내석과 작품비 서촌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다 ⓒ 김정봉


정문 앞에 세워진 '송강정철작품비 안내' 마지막에 "송강께서 태어나신 유서 깊은 이곳에 그 분의 투철한 충효사상과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공복정신을 기리고 시가문학의 창의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그 대표작품을 수록한 시비를 세워 만세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고 적혀있다.

적어도 정치가로서 정철은 충효사상, 선공후사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조선 최대의 정치 참극으로 기록되는 기축옥사의 최고 책임자로, 천 명의 생명을 죽게 한 것이 충효사상과 선공후사로 여겨진다면 충효사상과 선공후사는 몇 번이고 버려져야 할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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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농학교 담벽화 농학교학생의 마음을 담은 벽화.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한다 ⓒ 김정봉


한 학생이라도 읽지 않을 거라 생각되어 다행이지만, 교육목적이라면 차라리 곁에 있는 서울농학교학생의 절실한 소망을 담은 담장벽화를 한 번이라도 구경시키는 것이 나을 듯싶다.

추사 집터의 안내 표지석은 잘못

통인시장 길 건너편에 영조의 잠저였던 창의궁터와 김정희 집터를 알리는 표짓돌이 나란히 있다. 두 돌이 나란히 서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영조와 추사의 관계는 널리 알려진 바, 추사 증조부(김한신)가 영조의 사위이며, 추사는 영조 외고손자다. 이런 인연으로 표지석에 "창의궁 터는 곧 추사 선생이 사시던 곳"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딸과 사위에게 월성위궁을 지어주었는데 추사는 어려서 이 집의 주인이 되었고 이곳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월성위궁은 창의궁 남쪽 어딘가로 알려지고 있다. 적선동에 월궁동, 월성위골이라는 지명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경복궁3번 출구 혹은 정부청사 뒤편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창의궁터가 김정희 집터라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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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동아리만 남은 백송 100여 년 전 사진을 보면 백송이 있는 이곳이 창의궁터였다는 점은 확실하다. 창의궁 흔적은 집 속에 묻혀버리고 명을 다하여 아랫동아리만 남은 백송이 이 터를 지키고 있다 ⓒ 김정봉


창의궁터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이 들어선 후 쪼개져 그 흔적은 알 길이 없다. 아랫동아리만 남은 백송(白松)이 쪼그라들고 옹색한 이 터를 지키며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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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궁터 골목길 창의궁터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이 들어선 후 쪼개져 사진속의 골목처럼 변하였다 ⓒ 김정봉


예산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성장한 추사는 당대 서촌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그의 자취는 그리 많지 않다. 당대의 문인들이 교류한 송석원의 바위에 '松石園(송석원)'이란 글씨를 남겼으나 친일파 윤덕영의 집 '벽수산장'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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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意輪(여의륜)’현판 옥류동천 박노수미술관 앞에 걸린 추사글씨를 전각한 것이다. 서촌에 남은 추사의 글씨여서 반갑다 ⓒ 김정봉


옥계동천 한켠 박노수미술관 앞에 추사의 글씨를 전각한 '如意輪(여의륜)' 현판이 있고 수성동계곡에 대한 감회를 읊은 추사의 시 '수성동우중관폭(水聲洞雨中觀瀑)'이 전하여 그나마 우리를 위로해 준다.

보안여관, 이름 참 묘하네

백송의 미로 길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영추문. 경복궁 서문으로 청와대가 가까이 있어 검문이 심하다. 이런 분위기에 맞게 영추문 맞은편에 이름도 묘한 '보안여관' 건물이 있다. 1930년대에 건립되었다 하나 뼈대는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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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 1930년대에 세워진 이 건물은 아직 건재하여 자신의 존재, 더 나아가 서촌을 알리고 있다 ⓒ 김정봉


1930년대에 서정주가 이중섭과 교류했고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시인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낸 곳이다. 1960~70년대에는 청와대 공무원들과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보안여관의 이름은 어디서 온 걸까?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청와대 가까이에 있어 이름에서 제법 수상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보안여관'은 이 건물이 세워진 1930년대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2004년까지 여관으로 명을 이어오다 근래에 공연, 전시, 퍼포먼스를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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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파는 구멍가게‘ 간판 보안여관 간판과 함께 보안여관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 김정봉


문기(文氣)와 예기(藝氣)가 왕성한 서촌의 일면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촌의 상징적 건물이다. 건물 좌우에 달린 '보안여관'과 '예술을 파는 구멍가게'라는 간판이 '여관에서 예술까지'라는 이 건물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돈이 안 되면 파괴하고 정신마저 그 속에 묻어 버리는 세태에 반기라도 들 듯 타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자신의 존재, 더 나아가 서촌을 알리고 있다.
#백운동천 #윤동주문학관 #청운초등학교 #백송터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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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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