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먹고 자고... 다 씨앤앰 때문입니다

[현장]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노숙농성 10일차

등록 2014.07.18 20:10수정 2014.07.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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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서울 도심에서 노숙농성과 거리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는 지난 7월 8일부터 서울 청계광장 옆 파이낸스센터 뒤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케이블방송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0일차 농성투쟁 현장을 동행했다. - 기자 말

지난 17일 오전 7시 50분께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건물 뒤쪽 인도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80여 명이 MBK파트너스사 앞 농성장에서 또 하룻밤을 보냈다. 이들은 원청 씨앤앰의 노조파괴 공작과 해고에 맞서 지난 8일 노숙농성을 시작했고 17일 현재 10일차를 맞았다. 이른 시각인데도 이들은 벌써 기상해 아침식사를 마쳤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노동자도 있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노동자도 있다. 한쪽에서는 장기를 둔다. 몇몇 노동자는 비와 쓰레받기를 들고 다니며 농성장을 청소한다. 파이낸스센터 건물 20층에 MBK파트너사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맥쿼리가 있다. 이 두 사모펀드는 씨앤앰의 대주주다. 농성장 주변에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가 담긴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대량해고 노조파괴 공작에 앞장서는 투기자본 MBK-맥쿼리 규탄한다!"
"2014년 임단협 투쟁 승리! 케이블방송 지역공공성 쟁취!"

 17일 오전 씨앤엠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휴식시간을 갖고 장기를 두고 있다.
17일 오전 씨앤엠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휴식시간을 갖고 장기를 두고 있다. 노동과세계 변백선

농성장에서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임정균 정책부장을 만나 농성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545명이 17일 현재 10일차 노숙농성을 잇고 있다. 8개 조로 나뉘어 24시간씩 돌아가며 파이낸스센터 농성장에서 철야농성을 한다. 농성장 당번을 비롯해 전 조합원이 매일 오전 정해진 장소에 집결해 오후까지 결의대회와 거리선전전, 1인시위 등을 벌이고 있다.

케이블방송 씨앤앰의 설치와 유지보수(AS), 철거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씨앤앰의 정규직 직원이 아니다. 씨앤앰의 영업구역인 서울, 경기 23곳 모두 파트너사로 불리는 하청업체가 위수탁 계약을 통해 운영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AS는 대부분 하청업체 정직원, 설치는 하청업체와 개인사업자, 또는 건당으로 계약된 도급(재하도급)이다. 그나마 지난 2013년 2월 13일 노동조합을 만들고 반 년이 넘게 이어온 임단협을 파업투쟁으로 승리하면서, 원하는 조합원은 모두 하청업체 정직원 전환을 쟁취했다.


노동조합이 있기 전 평균임금은 유지보수 직군이 190만 원, 설치직군이 210만 원이었다. 이는 근속연수 평균 8년, 평균연령 38세인 노동자들이 한 달 평균 68시간 이상 일해서 받는 금액이었다. 회사는 지표차감, 검수차감이란 이름으로 차감을 하고, 기타 유지비도 개인에게 부담하게 했다.

 강남 씨앤엠 본사 앞에서 열린 3개 지부 공동투쟁 32일차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강남 씨앤엠 본사 앞에서 열린 3개 지부 공동투쟁 32일차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강남권역 앤씨·원플러스·태성·케인·티엔씨에스, 동부권 팀스·신성·이플러스·원케이블, 중부권 제이씨비젼·제이씨중구·중앙·티엔씨넷, 경기권 씨그마·기가·대경·굿모닝 등 총 18개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18개 업체(지회) 중 16곳이 2014년 2월 공동교섭을 시작했다. 교섭에 진전이 없어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했고, 중노위 쟁의조정 과정에서 원청이 나오지 않는 한 노동조합의 요구안에 대해 협력업체 사장단에서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중노위도 인정하고 쟁의조정 중지 결정을 했다. 노조는 5월 26일부로 쟁의권을 획득했다.

노원 원케이블서비스가 6월 21일 조합원 10명에게 소사장(재하도급) 계약만료를 핑계로 고용승계를 거부했고, 6월 30일에는 씨앤앰 외주업체 마포 티엔씨넷 조합원 28명, 일산 시그마네트워크 조합원 36명을 대량 해고했다. 조합원 74명을 계약해지한데 이어 노동조합이 7월 8일 노숙농성을 선포하니까 씨앤앰은 즉시 협력업체 13곳에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 오늘(17일) 밤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던데요, 비가 오면 잠자리는 어떻게 하세요?
"비가 조금 오면 그냥 여기서 버티구요. 너무 많이 와서 도저히 안 되면 갈월동 노조 사무실과 언론노조 사무실에 나눠서 자요."

- 농성하는 조합원들 세 끼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저희 장모님이 식당을 하세요. 사정을 말씀 드려서 저렴하게 매일 저녁밥을 지어다 주세요. 저녁을 그렇게 먹고 아침에는 컵라면에 전날 먹고 남은 걸 먹어요. 점심은 각자 사먹고 영수증을 제출해요. 도시락은 쓰레기도 많고 피해가 크더라구요."

희망연대노조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와 씨앤앰지부, 티브로드지부는 공동투쟁을 벌이고 있다. 매주 수요일 3개 지부가 합동문화제를 통해 단결을 다지고, 금요일에는 씨앤앰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직지부가 함께 문화제를 연다.

지난해 6월 노조에 가입했다는 권경승(56) 조합원은 노숙농성이 "견딜 만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 티엔씨에스 소속이에요. 사장이 이아무개라는 사람인데 사장이면서 CJ에서도 사업을 했어요. 우리가 노조에 가입해서 주장을 하니까 원래 타코스였던 협력업체 이름을 씨엔에스로 바꾸고 바지사장을 세웠어요. 우리보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며 협박을 합니다. 11명 중 8명이 가입했어요.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 노조에 가입한 건데 정작 나이 있는 사람들만 가입하고 젊은이들은 안해 안타까워요. 우리가 잘해야죠."

권씨의 두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의 부인은 유방암 수술을 한 뒤 건강이 좋지 않단다.

"제가 혼자 벌어 대학 등록금 대기가 어려워 지금 아이들이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어요."

고용을 보장받고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지만 50대 노동자가 거리에서 노숙하며 투쟁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어요. 현장에서 일할 때가 가장 좋죠. 제 주변에 KT에 다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다시 협력업체에 들어가 일하는 사람이 많아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쫓겨나면 어떡합니까."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씨앤앰 본사를 비롯해 먹튀자본 맥쿼리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씨앤앰 본사를 비롯해 먹튀자본 맥쿼리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노동과세계

오전 8시 40분이 되자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나섰다. 조합원들은 씨앤앰 본사를 비롯해 서울 도심을 누비며 맥쿼리와 씨앤앰을 규탄하고 있다. 집회 시간이 다가오면서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젊은 노동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은 20대부터 60살까지 연령층이 넓다. 정년이 60살이며, 평균나이는 30대 중후반이다.

삼성역 7번 출구 앞 씨앤앰 본사가 있는 사거리 한쪽에서 민주노총가를 비롯한 투쟁가가 연달아 울려퍼진다. 노조 간부들은 집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고, 조합원들이 도착하는 대로 대오를 형성했다. 3개 지부 공동투쟁 32일차 결의대회가 시작됐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구호가 삼성역 앞에서 쏟아진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먹튀자본 악질자본 MBK 박살내자!", "직장폐쇄 대량해고 씨앤앰원청이 책임져라!"

김영수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장이 대회사를 통해 원청 씨앤앰과 대주주 맥쿼리 등을 강력히 규탄하고,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건강한 일터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지부장은 "더운 날씨에 시청과 광화문 등에서 노숙하며 대시민선전전과 1인시위를 하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그래도 우리가 씨앤앰과 맥쿼리의 부도덕과 가입자들에 대한 기만행위를 알려내 바로잡고 우리 일터를 사람이 살 만하게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격려하고 "직장폐쇄로 우리를 억압해도 굴하지 말고 강고한 투쟁으로 그들에게 경고하자"고 밝혔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폐쇄 부당해고 박민혁이 책임져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씨앤엠 본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폐쇄 부당해고 박민혁이 책임져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씨앤엠 본사 주차장으로 향했다.노동과세계 변백선

1차 결의대회를 마치고 잠깐 담배 한 대 태우며 쉬는 시간. 조합원들 사이에 앳된 얼굴의 여성이 있다. 윤혜원(21) 조합원은 서울 중부권 중앙지회 소속이다. 그는 내근직으로 전산업무를 담당했다. 1994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쳐도 21살이다. 여성 조합원들은 노숙농성은 하지 않고 집회와 선전전 등에만 결합하고 있다.

"노동조합에 어떻게 가입하게 되셨어요?"
"그냥 우리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우르르..."
"여성 조합원이신데 이렇게 다니면서 투쟁하는거 힘들지 않으세요?"
"선배들이 다들 잘해 주세요. 저기 빨리 모이래요."

쑥스러운지 묻는 말에 답변조차 잘 못하는 여성노동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여성노동자도 남성들과 함께 어깨 걸고 당당히 투쟁하고 있다.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545명 중 여성은 70여 명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행진과 실천투쟁에 나섰다.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4열로 서서 방송차를 따라 삼성역 7번 출구 안쪽 골목에 위치한 씨앤앰 본사 건물로 향한다. 노조파괴 주범 중 한 사람인 박아무개 부사장을 향해 노동자들이 외친다.

"OO아 우리가 왔다! 바짝 긴장해라!", "씨앤앰이 책임져라!", "먹튀자본 각오해라!", "박OO이 책임져라!"

 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가 씨앤엠 본사 입구 셔터문에 노동조합 몸자보를 걸고 씨앤앰 원청과 먹튀자본 맥쿼리를 규탄했다.
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가 씨앤엠 본사 입구 셔터문에 노동조합 몸자보를 걸고 씨앤앰 원청과 먹튀자본 맥쿼리를 규탄했다. 노동과세계 변백선

씨앤앰 사옥 앞. 회사 관리자들과 경찰이 무전기를 들고 정문 근처에 서서 분주히 오간다. 사옥의 셔터는 굳게 닫혀 있었다. 협력업체 하청노동자들은 10년, 20년을 일하는 동안 본사 건물에 단 한 번도 와보지 못하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이곳에 왔다.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500여 명이 삼성동 씨앤앰 본사 건물을 돌며 함성을 질렀다. 노동자들 구호소리가 씨앤앰 본사 건물을 쩌렁쩌렁 울린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직장폐쇄 부당해고 씨앤앰이 책임져라!"

 씨앤엠 본사 주차장을 가득 매운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씨앤엠 본사를 향해 규탄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씨앤엠 본사 주차장을 가득 매운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씨앤엠 본사를 향해 규탄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노동과세계 변백선

임민규(36)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직차장이 대오 옆에서 조합원들 행진을 이끈다. 티엔씨넷지회 소속인 그가 말주변이 없다고 해서 그럼 한 마디로 하라고 했다.

"피땀 흘려 열심히 투쟁해서 꼭 승리할 겁니다. 우리를 해고하고 직장폐쇄를 해서 100억을 들여 매각가격을 높이려 한다면, 우리가 투쟁으로 매각가격을 떨어뜨려 주겠다! 책임없다 회피말라 원청이 책임져라!"

노조는 원청인 씨앤엠이 2014년 임단협 과정에서 노조파괴공작을 진행해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MBK, 맥쿼리라는 투기자본으로 잘 포장해서 매각하려다가 이에 실패하자 매각의 걸림돌로 노동조합을 지목하고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공세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씨앤앰 성낙섭 전무는 지난 9일 <미디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직장폐쇄와 노조와해 논란 관련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며 "우리는 영업 설치 AS업무를 위탁한 입장으로 협력사를 직접 핸들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홍명호 씨앤앰 홍보팀장은 "직장폐쇄 문제로 협력사에 '업무에 차질이 없고 상호간 피해가 없도록 최대한 노력해 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면서 "(정규직) 노조 요구안이 지나치게 높다, 우리는 제시한 내용(3% 인상) 이상을 고려할 수 있는 경영환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 그리고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씨앤앰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씨앤앰 차를 타고 씨앤앰 상품을 파는 노동자들입니다. 씨앤앰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단계하도급으로 인해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74명이 하루아침에 계약만료로 해고돼 길거리에 나앉았고, 7월 8일 노숙농성을 선포하자 13개 업체 조합원들 회사 출입을 금하는 공격적 직장폐쇄를 해서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씨앤앰 원청이 책임지라고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절박한 요구를 외칩니다."

희망연대노조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깃발을 든 노동자들이 씨앤앰 본사 주차장을 꽉 메웠다. 정문 셔터는 내려졌고 그 안에는 사측이 동원한 용역이 서 있다. 용역이 카메라를 들고 불법채증을 하는 모습을 본 조합원들이 강력히 항의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희망연대노조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전 조합원들은 씨앤앰 본사 건물을 향해 대량해고와 직장폐쇄를 일삼는 노조파괴 행태를 규탄했다.

정오께 씨앤앰 본사 규탄투쟁을 마무리한 노동자들은 점심식사 후 2개 조로 나뉘어 서울 수십 개 거점으로 이동해 거리 선전전을 하거나, 종로 수운회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은 서울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씨앤앰과 맥쿼리의 투기와 먹튀, 노조탄압 행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담은 선전물을 나눠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어 농성당번인 목요일조가 농성장으로 오고 어젯밤 농성장을 지킨 수요일조와 나머지 조합원들은 귀가했다. 오후 6시께 서울 파이낸스센터 농성장에서 목요일조 조합원들이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 배식을 받는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
저녁식사 배식을 받는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노동과세계 변백선

식사를 마칠 무렵 간부들이 농성장 한 구석에서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늘 여기서 하세요?"
"아니요. 보통은 대충 씻어서 가져가는데 오늘은 식판이 부족해서 그래요."
"물이 많이 들 텐데 어디서 떠오세요?"
"이 근처 건물에서 받아다 써요."

윤성태(39) 케인지회 부지부장이 세제를 묻혀 식판을 닦고 다른 조합원이 주전자로 물을 뿌려 닦아낸다. 조금 늦게 도착한 조합원들도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조합원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 오후 6시가 넘고 7시가 가까워지면서 근처 건물에서 나온 직장인들이 퇴근길을 재촉한다.

직장인들이 지인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귀가해서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곳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지샌다.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일터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진짜 사장 원청 씨앤앰이 해고와 직장폐쇄를 철회할 때까지 이들은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MBK가 입주해 있는 파이넨스센터 앞에서 저녁집회가 열렸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숙농성 10일차를 마무리 했다.
MBK가 입주해 있는 파이넨스센터 앞에서 저녁집회가 열렸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숙농성 10일차를 마무리 했다.노동과세계 변백선

노용수 조직부장이 마무리집회에 앞서 오늘 농성장을 사수하기 위해 온 목요일조 조합원들에게 농성장에서 서로 지켜야 할 수칙을 설명했다. 집회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밤 11시30분에 마무리한 후 12시경 취침을 한다. 근처 건물 화장실을 사용하되 청소하는 노동자가 힘들지 않게 깨끗이 사용하자고 했다. 쓰레기는 각자 치우고 분리수거를 한다. 조합원이란 걸 구분하기 위해 전원이 몸자보를 한다. 박석훈(50) 부지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유선방송에서 30년간 있었어요. 노조를 만들고 나서 임단협을 하려고 조합원들 임금명세서를 모았더니 3년 일한 사람 실수령액이 140만 원인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케이블에서 3년 경력이면 모든 걸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연차예요.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부려먹었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다 순하고 착해요.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원청도 밉지만 파트너사(협력업체)들도 정말 미워요. 원청이 수료를 깎으면 중간에서 더 빼돌려먹고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죽어나는 건 노동자들뿐이죠."

박석훈 부지부장은 아산과 의정부지역 유선방송 업종에서 근무하다 17년 전부터 대경에서 일해 왔다. 그가 속한 대경과의 계약은 오는 7월 31일부로 해지된다.

각 지회별 소개와 인사를 한 후 오후 7시20분 MBK가 입주해 있는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저녁집회를 열었다. 집회가 끝날 무렵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 12시경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오후가 되면서 습기 머금은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급기야 비가 왔다. 조합원들은 일단 젖는 물건들을 한데 모아 비닐로 덮고 건물 처마 등에서 비를 피했다.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목요일조는 연대차 방문한 전국학생행진 학생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노숙농성 10일차 일정을 마무리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민주노총으로 이동하는 길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투쟁과 노숙농성을 하는 광화문광장에서도, 티브로드지부가 노숙 중인 흥국생명 앞에서도 비를 피하기 위해 급히 비닐을 덮는 광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주노총 신문 <노동과세계> 온라인에도 게재됐습니다.
#씨앤앰 #맥쿼리 #MBK #비정규직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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