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털털해지다: 7월1일 면도직후(좌), 7월24일 현재 모습(우)전병호의 수염(7월24일 현재)
전병호
표트르 1세(Pyotr I, 재위 1682∼1725)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형도 일찍 죽게되자 어린 나이에 차르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복누이 소피아공주에게 실권하고 크렘린궁 밖에서 야인생활을 하며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야 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크렘린 궁 밖 외인촌을 전전하며 자랐던 그는 근대화된 서유럽 선진국가(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온 기술자들과 접촉하면서 최첨단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화려한 의식이나 불합리한 전통을 싫어했고 실리적이며 과학적인 것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권력을 회복한 후 실시한 개혁정책 중 하나는 서유럽화 정책이었다. 그는 여인들에게 러시아 전통의상인 긴치마를 짧게 자르고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무도회에 나와 술을 마시게 했다. 이와 더불어 남성들에게는 수염을 자르도록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러시아 남성들은 수염을 기르는 것을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주는 성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수염을 자르는 것은 그 자체가 불경스럽고, 큰 수치이자 모욕이라고 생각하였다. 당연히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이에 표트르 1세는 수염세를 제정하여 수염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은 수염토큰이라는 일종의 허가징표를 가지고 다니게 하였다. 이 수염토큰에는 '수염세가 실시됐다'와 '수염은 불필요한 짐이다'라는 짧은 두 개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표트르 1세 자신도 수염을 기르고 있었던 것을 보면 수염세 징수 목적이 수염이 '불필요한 짐'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것보다 실제로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어려워진 재정을 채우기 위한 세수 증대가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표트르 1세는 수도를 당시 모스크바에서 발트해 바닷가 불모지인 상트 페테르부르크('표트르의 도시'라는 뜻)로 옮겼다. 자고로 무리한 토목공사는 재정파탄의 주범이 된다. 당시 러시아 재정도 여유만만은 아니었으리라. 새 수도 이전은 1703년 시작되었다. 수염세를 제정한 해가 1705년이니 이 시기에는 이미 대단위 토목공사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을 것이고 여기에 발트해 진출을 위한 전쟁준비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었을 게 뻔하다. 이에 표트르 1세는 그저 털일 뿐인 수염에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수염세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억압적 통치로 사실 표트르 1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러시아 근대화의 주혁, 개혁의 군주라 칭송하며 대제'(the Great)'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절대권력을 이용한 지나친 정치적 자유와 사상적 자유의 탄압으로 폭군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생각해 보라. 신체의 일부에 나는 털에 세금을 징수하는 수염세가 말이 되는가?
수염세가 실시 된 후 초반 러시아 주류사회는 이 세금법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는 듯 했다. 하지만 자존심의 상징이라던 수염을 지키는 것보다 세금 내는 것이 더 싫었던지 수염세 징수 7년 만에 주류사회 남성들의 턱수염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세금이 한 사회체계를 몽땅 바꿔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된다(자료출처: 위키백과 사전).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중요한 통치수단이자 정책이다. 최근 발표한 정부의 부동산정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세금정책이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세금정책에 대해 국민은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현실은 이러한 정책에 대한 관심보다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여전히 이념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같은 탈 이념 복지지향의 시대에는 사실 이념논쟁보다는 복지정책중심의 논쟁과 실행방안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 하더라도 분명 과잉 이념논쟁이다.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의 기준선은 세금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통상적으로 보수는 부자에게 보다 안정적인 세금정책(미국이나 기타 선진국)으로 보수층을 결집 시키고 진보는 서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세금정책으로 지지를 호소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세금정책은 있으나 그것이 이념논쟁으로 가려져 국민은 진짜 자신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세금정책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적 선택이 아닌 그 위에 덧칠해진 이념논쟁의 희생물이 되어 정치적 편가르기에 동참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결과물로 '종북' '좌빨' '수꼴' '꼴보'니 하는 이념의 찌거기 말들만 난무하게 되었다.
지난 17일 jtbc 9시 뉴스에서 손석희씨와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과의 '사내유보금 과세 반대'에 대한 재계 입장을 듣는 인터뷰가 있었다.
- 손석희: 우문이긴 합니다만 법인세 과세를 더 올릴 것이냐? 사내유보금에 과세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어떤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 송원근: 네 둘 다 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간부의 말이니 이것이 재계의 세금정책에 대한 솔직한 입장일 것이다. 세금이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안내면 안낼수록 좋다는 속성을 가졌다. 따라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복지실현을 위해 소요되는 돈을 누가 더 많이 부담할 것인가가 세금정책의 키이다. 100개를 가진이나 10개를 가진이나 똑같이 1개를 내는 세금정책이 공평한 것인가? 많이 가진 사람이 좀 더 많이 내는 것이 공평한 세금정책인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대한민국이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꾸려졌다. 이와 함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경제정책이 드러나면서 '줄푸세' 정책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른바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워 경제를 살린다는 박근혜 정부의 '줄푸세' 공약은 최 후보자가 주도했었다. 대선 당시 내세웠던 그 많은 복지정책들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생각해보고 다시 부각되고 있는 '줄푸세'가 진정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잘 따져보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세금정책은 한 나라 남성들의 자존심으로 여겼던 수염까지 없앴다. 내 삶과 직결되는 세금정책을 앉아서 지켜만 봐서야 되겠는가. 아침마다 자라는 수염을 보거든 항상 질문해 보자.
'지금 이 나라 세금정책은 내 수염을 기를 만한 정책인가?'※토막상식: 표트르 대제가 역사상 수염세를 부과한 첫 번째 사람은 아니었다. 영국의 헨리 8세는 1535년 수염세를 도입했다. 이 세금은 누진세였는데 수염을 기르는 이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양하게 부과되었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수염세를 재도입하였는데 2주일이상 기른 수염에 대해 과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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