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모인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6000여 명이 의료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
전아름
지난 겨울 정부가 '보건의료서비스산업 투자활성화대책'이란 것을 발표했다. 대략 보건의료계의 규제를 완화해 병원이 돈 벌 수 있는 길을 많이 터준다는 내용이다. 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서 일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필시 큰 싸움을 부를 징조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발표 이후 그나마 1년 중 가장 한가하다는 12월도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 준비로 정신없었고, 심지어 2014년 1월 시무식을 하던 날조차도 대국민 홍보지를 만드느라 바빴다. 노조 사무실엔 비장한 전운마저 감돌았다.
해묵은 주제 의료민영화, 어떻게 쉽게 알릴 것인가의료민영화는 이미 해묵은 주제였다.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여정부 때부터 논란이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람들이 병원에 갖는 불신도 깊었다. 이미 병원비는 비싸고, 건강보험은 무능하다는 인식, 보장성 높은 민간보험 하나 안 들어놓고 병원에 가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
그래서 의료민영화랍시고 해봤자, 더 나빠져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게 여론이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가 누리집에,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았으니, 참으로 쉽지 않을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에선 '투자활성화'라 부르고, 우리는 '의료민영화'라 부르는 것. 이것은 상법상 자회사 설립을 통해 병원에서 건물임대업까지 할 수 있도록 부대사업의 범위를 대폭 허용해주는 정책으로, 의료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병원의 영리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병원이 '합법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게 되면 의료 공공성이 약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의 건강권을 자본에 맡기겠다는 정부의 이 '어마무시한' 정책을 어떻게 쉽게 설명할 것이냐, 어떻게 쉽게 알리느냐 하는 게 최대 난제였다.
큰 숙제를 받은 나는 자신이 없었고, '의료민영화 저지, 의료공공성 강화, 국민건강권 사수'라는 이 엄청난 사명을 뒷받침할 홍보물을 잘 만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시간은 없었고 마음은 바빴다.
주말을 꼬박 바쳐 만든 첫 번째 홍보지는 지부에 도착하자마자 '글자가 작다', '내용이 어렵다', '유니세프 팸플릿 같다', '노인들이 이걸 다 어떻게 보냐'는 원성이 빗발쳤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한숨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확 도망쳐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나는 도망치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었던 '큰 싸움'... 이제 의심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