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채증·체포조 동원 한전, 경찰은 뭐하나

청도 송전탑 공사현장 연일 부상자 속출... 인권침해 논란에도 경찰은 한전 편들기

등록 2014.08.06 09:37수정 2014.08.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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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송전탑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덤프트럭을 막기 위해 출입구 앞에 서 있던 주민이 한전 직원에 의해 끌려나오다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 이보나


"할머니들이 죽어 나가야 이 싸움이 끝날기가?"
"아무리 싸우고 할머니들이 죽니 사니 해도 정부나 한전은 꿈쩍도 안 할기고만. 밀양을 보면 모리나?"
"우리 힘으로 안 되니까 하느님한테 송전탑 건설 못 하게 해달라고 목이 터져라 기도했는데 소용이 없는기라. 무슨 희망이 있겠노…."

지난달 21일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현장에서 연행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전력(아래 한전)이 채증조와 체포조까지 편성해 주민들의 공사현장 접근을 막고 있어 인권침해 논란이 되고 있다.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다시 시작된 5일 오전 송전탑 공사장 입구에서 굴착기와 덤프트럭의 출입을 막으며 의자에 앉아있던 김선자(75) 할머니가 한전 직원들에 의해 들려 나오다 땅에 떨어져 부상당했다. 이 광경을 보고 강하게 항의하던 이차연(75) 할머니도 끌려 나오다 쓰러져 실신했다.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대책위 활동가들은 긴급후송을 요구했지만, 굴착기와 공사 자재를 실은 덤프트럭이 도로를 막고 있어 인근에 있던 구급차의 진입이 늦어졌고 40여 분 후에야 응급실에 후송될 수 있었다.

응급 차량의 진입이 늦어지자 실신한 이차연 할머니는 호흡곤란을 겪다 의식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한전 직원들과 경찰은 지켜보기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이보나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한전 직원들이 김선자 할머니를 의자 채 들어내다가 내동댕이쳤다"며 "하지만 경찰은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청도 대남병원으로 후송돼 응급치료를 받은 뒤 입원했다. 이억조(75) 할머니와 조봉연(75) 할머니도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억조 할머니는 정신이 혼미해져 병원에 실려가면서 "죽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전은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공사장 입구에서 끌어내기 위해 채증조와 체포조로 나뉘어 사진을 찍고 강제로 끌어냈다. 한전 관계자는 주민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업무방해로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면서 "공사를 방해하는 사람을 체포해 경찰에 넘기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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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공사가 진행중인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현장에 '공사 대신 농사'라고 쓴 목장갑이 널려 있다. ⓒ 조정훈


논란이 일자 한전은 주민들 때문에 막대한 공사비가 추가로 투입되고 공사가 지연되는 등의 업무방해를 방지하기 위해 공사장을 지키고 있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을 체포해 경찰에 인계하는 것도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현행범일 경우 체포해 경찰에 넘길 수 있다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전이 불법채증과 반대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데 대한 논란이 있지만 경찰은 오히려 한전 측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어 주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경찰은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과 업무방해 혐의를 들어 수시로 주민들과 현장 활동가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불만을 사고 있다.


4일 오전에는 공사장 출입구를 막고 있던 할머니를 경찰이 끌어내는 도중 이를 항의하던 대학생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경산경찰서로 연행한 뒤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사가 시작된 후 벌써 19명이 연행되었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등 모두 풀려나와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경찰은 여기에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현장을 기록하는 활동가들에 대해서도 "업무방해를 선동한다"며 체포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동네 주민 2명이 공사장 입구 출입문을 잡고 공사중단을 호소하자 청도경찰서장은 "한전 직원들을 감금하고 있다"며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라고 말해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현희 청도경찰서장은 또 헬기 사용으로 인해 소음피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대책위의 요구에 "한전이 헬기 사용으로 2억 원이 넘는 추가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며 한전 측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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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송전탑 건설공사장 입구에서 송전탑반대 대책위와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공사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조정훈


이에 대해 변홍철 대책위원장은 "공사가 시작된 후 주민들이 연일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체포 위협과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한전은 공사를 멈추고 지중화 등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권혁장 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소장도 "한전이 주민들을 채증하고 강제로 끌어내는 등의 행위는 인권침해 논란이 될 수 있다"며 "경찰의 대응도 일방적인 한전 편들기를 하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인권침해 논란에 대해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송전탑 #삼평리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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