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이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을 취소한 이유

[서평] 불의한 시대를 증언하는 다큐 사진, <최후의 언어>

등록 2014.08.12 11:27수정 2014.08.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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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 잡지나 모니터로 남들이 찍은 사진들을 종종 감상한다. 같은 카메라로 담아내도 찍는 사진가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난다. 흡사 소설처럼 이야기가 읽혀지는 사진, 한 편의 수필 같은 짧고 굵은 메시지의 사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사진 등.

이외에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진이 있는데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에만 묶이지 않고 진정성이 담긴 기록에 충실할 때 다큐멘터리 사진은 감동과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사진의 예술성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형성된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과 유리되어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사진은 특히 인간과 그 삶의 기록에서 벗어나 의미를 얻기 어렵다.

이 책 <최후의 언어-나는 왜 찍는가>는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우리 시대의 대표적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이상엽이 찍은 100여 컷의 필름사진과 그의 단상이 담긴 포토 에세이다. 불의한 시대와 숙명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사진집이기도 하다.

불의한 시대, 최후의 언어가 된 다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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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언어> 책 표지. ⓒ 북멘토

"제주 구럼비 해변엔 해군기지 공사장을 따라 서귀포를 향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다.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을 세운 이스라엘을 욕하다가 우리 땅에서 이런 풍경을 본다."(본문 가운데)

진도 팽목항과 제주 강정마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말고도 연평도, 백령도와 새만금에서 중국 동북성과 동부 연안도시, 실크로드까지.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파괴되어 가는 강과 산, 팍팍한 세상에서 밀려나고 소외되는 사람들,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특히 비가 오는 제주도의 남쪽 강정마을을 찾아 제주가 동북아 분쟁의 전초기지가 될지 평화의 섬으로 남을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라고 일갈하는 저자의 말에 독자는 허가 찔린다.


귀한 자연의 경치들을 무참히 짓밟는 모습에서 우리를 본다. 동시대 보통 사람들이 그들더러 개발과 성장의 선봉이 되어달라고 열렬한 얼굴들로 의탁했기 때문이다.

특히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차별을 반대하며 2명의 노동자가 45m 송전탑에 올랐었다. 그 송전탑 사진은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2명(천의봉, 최병승씨)은 이 철탑에서 자그마치 296일간 농성을 벌였다고 하니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정규직 직원들과 똑같이 일을 하고도 말도 안 되는 차별과 대우를 받아야 하는 그 억울함이 얼마나 컸을 지 알것 같았다. 수많은 방송매체와 언론의 보도보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마주하는 진실이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카메라가 삶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더불어 이 책은 과거의 유물이라고 여겼던 흑백사진의 묘한 매력도 보여준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물사진에서 실크로드 각 나라의 풍경사진까지, 칼라를 베재한 흑백사진에서 본질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힘을 느꼈다.

풍경사진도 그렇고 특히나 사람이 꽉 차게 들어간 사진은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는 표정 속에 숨은 내면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한다. 화려하지 않은 흑백의 풍경 또한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준다.

사진의 본래 정신을 잃어버린 카메라 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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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과 직관에 다가가는 흑백 사진의 묘한 매력을 보여주는 사진 - 서울시청 앞에서. ⓒ 이상엽


"카메라는 사고하지 못한다. 사고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한다. 하지만 어떤 카메라가 어떤 히스토리를 갖고 내 품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본문 가운데)

니콘(Nikon) FA, 미놀타(Minolta) CLE, 캐논(canon) 뉴 F-1, 펜탁스 LX, 라이카플렉스(Leicaflex) SL2, 자이스 이콘, 라이카 M4-P, 올림푸스(OLYMPUS) OM4TI, 캐논 EOS-1n, 니콘 F4s, 핫셀블라드 X-Pan, 콘탁스 RTS,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2.8F, 마미야(MAMIYA) 7Ⅱ, 베리와이드(VERIWIDE) 100, 펜탁스 67Ⅱ, 핫셀블라드 500CM과 555ELD 등 이 책에는 저자가 사진가로서 찍어온 카메라의 특성도 설명돼 있다. 각 카메라의 소소한 역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의 눈길을 끈다.

그 중 일본의 유명한 카메라 회사 니콘에 대한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나 또한 십 여 년 전 처음 장만해 이삼년 동안 애지중지 찍고 다녔던 디지털 카메라가 작은 니콘 카메라였다. 요즘에도 유명 연예인과 함께 TV 광고에 흔히 나오는, 사진작가들을 비롯해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카메라다. 그런 니콘이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자회사라니. 미쓰비시는 전쟁 후 평화헌법으로 군수시장을 잃자 니콘(당시엔 일본광학)을 설립하고 민수로 눈을 돌려 카메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릴 적 푹 빠졌던 '우주소년 아톰'과 '마징가 제트'가 실은 일본 만화였다는 정도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를 만들던 대표적인 군산복합체 미쓰비시는 군부를 등에 업고 군수장비를 만들면서 식민지에서 노동자를 강제 징용했다. 그 노동력으로 거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 사람도 강제 징용당해 일본가서 일한 사람이 많다. 당시의 악랄한 임금체불과 폭력적인 노동착취로 지금도 법정 소송 중에 있다.

니콘 카메라로 지금까지 수많은 사진가들이 전쟁을 고발하는 사진을 찍었다. 얼마 전, 저자의 후배이자 일본에 사는 사진가 안세홍씨가 니콘살롱에서 위안부 할머니 관련 사진전을 하려고 계획했는데, 니콘 측이 일방적으로 사진전을 취소해 버렸다. 사진가는 도쿄지방법원에 제소를 했고, 이 일이 알려지자 미국 CNN은 이례적으로 특집방송까지 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알려졌지만 그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나서는 이가 소수였다. 물론 니콘의 힘 때문이었다.

니콘은 사진의 정신을 잃어버린 카메라 회사라는 비판을 받을만했다. 나 또한 저자처럼 니콘이 이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새로운 니콘 카메라를 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 사진가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카메라는 단지 사진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정신을 육화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

이상엽 글.사진,
도서출판 북멘토, 2014


#최후의 언어 #이상엽 #니콘 #전범기업 미쯔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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