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사에 가면 관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할 수도 있다. 왼편 여학생이 입은 옷은 포졸관복, 오른편 어린이가 입은 옷은 왕이나 세자가 입던 궁중 예복이다.
이민선
서문은 박해시대에 '천국으로 가는 문'으로 여겼던 자리다. 부정한 것은 서문으로 내어다 버린다는 미신에 따라, 천주교 신자들도 서문 밖으로 끌어내어 처형했다고 한다. 폐막 미사 때 교황이 바로 이 서문 옆에 자리하기로 예정 돼 있다.
읍성 중앙에는 300살 먹은 호야나무(서산 사투리, 회화나무)가 있다. 천주교 박해 역사를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나무다. 이 나무 동쪽 가지에 철삿줄을 매달아 수많은 신자들을 고문하고 목매달아 죽였다고 한다.
신자들을 매달았다는 동쪽에 있는 가지는 1940년대에 훼손되어 옹이만 남아 있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옹이 주변으로 녹슨 철사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호야나무해미읍성은 이렇듯 천주교 박해 성지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오롯이 천주교 박해 역사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성곽과 함께 조선시대 관청과 감옥(옥사), 객사 그리고 무기 등도 전시돼 있다.
활터에 가면 친절한 활터지기 설명을 들으며 활을 쏠 수 있고, 객사에 가면 관복을 입고 잠시 조선시대 관리가 될 수도 있다. 다듬이질, 짚풀공예, 왕골공연, 삼베짜기 장면을 볼 수 있고, 투호놀이, 윷놀이, 제기차기, 굴렁쇠 굴리기 등의 민속놀이를 체험 할 수 있다.
정문으로 사용되는 남문 주변에는 각종 무기가 전시 돼 있다. 15세기 최고 첨단 과학 무기인 '신기전'과 고려시대부터 사용됐다는 '대장군포',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별대완구'와 '화포', 성을 공격할 때 활용됐던 '운제' 등이 전시돼 있다. 운제는 일종의 사다리차로, 사다리가 구름에 닿을 듯 하다하여 '운제'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읍성은 지방의 관청과 사람들이 사는 곳을 둘러쌓은 성이란 뜻으로, 평상시에는 행정의 중심지가 되고 전시에는 방어 기지가 되는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미읍성에는 '진짜 민가'가가 없다. 민가를 복원시켜 놓긴 했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 없으니 '진짜 민가'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해미읍성에도 본래 민가와 학교가 있었다. 보존공사를 시작하면서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 해서, 성안에서 숙박을 할 수가 없다. 숙박을 하려면 주변에 있는 모텔 등을 이용해야 한다. 초가집에서 숙박을 하는 낙안읍성(전남순천)과 다른 점이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 3대 읍성(고창읍성, 해미읍성, 낙안읍성) 중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