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촉구 기자회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 기초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당신은 부양받고 싶은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비극은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2011년 4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받지 못하던 김씨 할머니는 폐결핵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원을 오가다 거리에서 객사했다. 같은 해 7월, 남해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70대 노인과 청주의 70대 노인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으로 인해 수급탈락을 통보받고 자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고민하다 투신했다.
2012년 2월엔 양산의 지체장애 남성이 자녀의 소득으로 수급에서 탈락하자 집에 불을 내 자살했고, 9월엔 치매 부인의 기초생활수급 탈락을 염려한 서울의 한 노인이 요양병원에서 투신했다. 11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권조차 없던 할머니와 손주는 촛불로 추위를 녹이다 화재로 사망했다. 2013년 9월, 신장투석 환자였던 부산의 한 아버지는 딸의 취업으로 인한 수급탈락 통보를 받고 딸에게 병원비를 부담시킬 수 없어 자살했다.
이들은 모두 가족이 있었으나 가족에게 부양받지 못했거나, 부양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가난에 빠져 도움이 필요해진다면 당신은 국가와 사회의 복지제도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은가, 가족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의 복지제도로부터 도움을 받는 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현재 가난한 이들에게는 가족에게 부양받는 모욕을 감수하라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에게는 있지만 국가에는 없는 것? '부양의무'우리나라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생계를 달리하거나 실제 부양하지 않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부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급자의 수급비를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할 수 있다. 매우 강력하게 수급자와 그 가족들을 추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수급자의 몫이며, 소명 책임도 수급자 본인에게 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제외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거나 미약한 경우가 절대 다수인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이는 큰 충격이다.
사실 '기초생활보장법' 자체는 부양의무자가 있으나 부양받을 수 없는 경우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지방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수급자를 우선 보호하도록 하거나, '구상권 청구'를 통해 수급자에게 보장된 비용을 부양의무자 가구에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생활보장위원회나 행정력은 수급(신청)자들을 우선 구제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 "실제 부양받지 못하고 있더라도 삭감·탈락될 수 있어요. 이에 이의가 있을 때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지만 이의신청 기간 동안은 여전히 삭감·탈락 상태입니다."
- "부양의무자에게 실제 그만큼의 소득이 없다고요? 그렇다면 부양의무자에게 고용주를 신고하라고 하세요. 그 뒤에 조정할 수 있습니다."
- "부양의무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요? 아직 연락이 안 된 지 3년밖에 안 됐네요. 이 정도로 가족관계 단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부양의무자가 재산이 있지만 부채가 많군요. 그러면 왜 돈을 빌렸고 어디에 썼는지 정확히 증명하셔야 합니다. 생활비는 인정되지 않아요. 교육비나 의료기록만 가져오세요. 아, 의료비에서도 간병비나 식비는 안 됩니다."
- "아드님이 부양을 거절하셨어요. 실제 친아들이 아니라구요? 어쨌든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나오네요."강력하게 적용되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족을 도리어 해체하거나 탈빈곤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미약한 수준의 가족관계마저 '부양의무자'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거부하거나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가 가난해져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