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을 이끄는 자, 프란치스코 교황

광화문 시복식, 그 현장을 생생히 담다!

등록 2014.08.18 09:53수정 2014.08.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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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6일.


드디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기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무엇이 이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이끌었을까? 그 현장을 담고 싶었다.

이른아침 버스를 타고 무작정 출발했다. 버스가 우회해서 명동부근에 정차한 것을 보니 분명히 시복미사가 현장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들떠있었고 한 손에는 모두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북적했다.

시복미사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시복미사에 참석할 수 있는 대상은 성당에서 직접 각 교구별로 선정된 인원이었다. 신청 후 입장권을 사전에 배부받으면 당일(16일) 오전 7시까지 신분확인 및 소지품 검사 후 입장할 수 있었다. 보안상의 이유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한 특단의 조치다. 하지만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비카톨릭 신자들은 현장 밖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오전 9시 반. 시청광장에서 광화문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중계TV와 방송장비 등은 광화문부터 시청광장까지 쭉 설치돼 있었다. 직접 광화문 앞까지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화면으로 미사를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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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복식현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다리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 ⓒ 배민식


오전 9시 35분경. 기자가 서 있던 장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나갔다. 초청권이 없어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손을 흔드는 모습이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탄차를 거부했고, 의전차량을 높은 차 대신 낮은 차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먼저 다가가기 위해서 교황은 항상 낮은 자리에 있기를 원했다. 이 날 교황은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고, 때로는 사람들과 악수하고, 직접 내려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약 20분간 퍼레이드를 하며 사람들과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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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복식현장 교황이 의전차량을 타고 지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반기고 있다. ⓒ 배민식


퍼레이드 후 오전 10시. 본격적인 시복미사를 집전했다. 기도로 미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124위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 복음서를 읽는 등 약 한 시간 동안 미사를 진행했다. 미사 집전 약 1시간 후 미사의 정점인 성찬 전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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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복식현장 성찬 전례가 시작되자 한 신부가 성찬예식을 진행하고 있다. ⓒ 배민식


추산 100만 명의 사람이 몰리다 보니 각 교구의 많은 신부들이 성찬예식을 도와 함께 진행했다. 성찬 예식에는 세례를 받은 자들만 참여할 수 있으며,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당장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리에서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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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복식현장 구급차가 혹시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 배민식


안전에 대한 문제는?

광화문 시복식 현장에는 약 35대의 구급차가 배치되었다.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을 조치하기 위해서다. 입장권을 확인하는 입구마다 구급차가 배치되어 있었다. 모두들 아무 사고가 없기를 빌었겠지만 시복식 당일(16일)은 32도 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폭염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환자가 발생하게 되면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이나 현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환자발생여부를 알려주어 응급조치가 바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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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복식현장 행사장 안으로 입장하지 못한 많은 시민들이 바깥에서 중계화면을 통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 배민식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퍼레이드가 끝나기 전까지는 현장에 입장권을 들고 참여한 사람들은 물을 마실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입장 시 플라스틱 물병을 반입금지 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퍼레이드가 끝나고 서울시 수돗물로 만들어진 아리수와 생수를 30만 병 이상 나눠줬지만 그 전에는 물도 마시지 못한 채 3시간 이상을 폭염 속에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시복미사에 참여하던 외국인 노인 한 분이 실신해서 구급차로 와서 응급조치를 받고 갔다.

시복행사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에서 구경하는 시민들에게도 또한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현장 당일 퍼레이드가 끝난 오전 10시부터 행사장 내부에 있는 참여자들에게 생수가 공급되었지만 현장 외부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생수가 공급되지 않아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그러던 중 자리에 지키며 미사를 드리던 한 여성은 미사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행사장 외부에는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행사장 외부와 내부를 나누기 위해 설치한 플라스틱 방호벽 위로 여성이 옮겨져 행사장 안에 있는 구급차로 긴급 호송되었다. 행사장 외부에 참여한 사람들도 현장에 참여한 사람만큼 많았던 것을 감안했다면, 물 공급이 잘 이루어지고, 응급조치 또한 잘 행해졌어야 한다.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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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복식현장 한 사람이 시복식 현장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 배민식


아시아에서 최초로 방한하게 된 프란치스코 교황. 아시아 국가에서 한국을 처음 방한했다고 한다. 왜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마저 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환영하는 것일까?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리고 자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더욱더 낮아지려는 그 마음에 감동받은게 아닐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작년에 낸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다.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

소외된 이웃을 먼저 찾아가고, 예기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에도 하나하나 포용해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름다운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한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 5일 한국공식일정이 마무리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겠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에 많은 변화가 있길 바라며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광화문 시복식 현장을 담았다. 철저한 보안때문에 현장 내부까지 접근 할 수 없었지만 바깥에서도 충분히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직접 아침부터 오후까지 미사에 참여하여 보고 듣고 느낀것을 남긴다.
#프란치스코 교황 #광화문 #시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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