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오히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 선생만 38일(8월 20일 기준)이라는 초인적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듯 하다. 그이의 얼굴, 눈빛을 바라 볼 때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어떤 숭고함의 비극을 느낀다. 그는 법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죽음도 불사하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일 여야는 재협상을 통해 다시 세월호 특별법 관련 합의안을 끌어냈다. 지난번 합의안에 비해 특별히 주목할 사항은 '1-1' 항목이다.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 중 국회에서 추천하는 4명 중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합의안에 대해 김영오 선생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유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세월호 정국은 다시 화해와 타협이 불가능한 파국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김영오 선생도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과 유가족들의 반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처럼 죽음을 불사한 단식을 지지할 수도 없고, 허용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예민한 정국 상항 속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아래 제시한 그 까닭은 내가 충심으로 제언하는 것들이다.
첫째, 김영오 선생의 뜻은 숭고하지만 그 생명까지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생의 결연한 입법 의지는 지금까지의 단식으로도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에게는 죽은 딸만이 아니라, 앞으로 잘 키워야 할 딸도 있다. 지금은 한 개인의 목숨으로 이 사회의 미래를 다 책임질 수 없고, 책임져도 안 되는 세상이다. 세상의 질서는 개인의 진정성만으로 해결할 순 없기 때문이다.
단식은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약자가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표현하는 마지막 수단일 순 있다. 그러나 죽음을 불사하고 생명을 내던지는 수단이 된다면 세상의 질서라는 더 큰 인륜을 파괴할 수 있다. 이 인륜적 질서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질서다. 이 질서가 파괴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는가?
둘째, 특별법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특별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입법이 되도 그 법에 따라 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조사를 하느냐에 따라, 조사의 결과를 갖고 법원에서 다툴 때도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또 달라질 수 있다. 그 판단의 결과를 가지고 실행에 옮길 때도 수많은 방해와 공작이 있을 것이다. 싸움은 특별법 하나로 단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첫 단추 하나에 모든 것을, 특히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걸 수는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장소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 때마다 성숙한 국민의 비판 정신으로 장애물을 뛰어 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특별법이 만능 열쇠인 양 여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지나치게 법을 물신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이다. 이젠 정파 간의 타협이 필요한 때다.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두 번째 합의안이 나왔다. 정치는 타협이고, 법은 그 타협의 산물이다. 이미 여야가 협상에 들어갈 때 부터 성역없는 수사권이 아닌 특검추천권을 쟁점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는 합의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 정도의 문제로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해선 안 된다.
셋째, 법은 도덕이나 종교가 아니다. 도덕과 종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절대 선을 취하는 근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으나 법은 다르다. 정치 세력 간 타협의 산물이고, 차선책일 수밖에 없다. 국가는 이런 법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다. 아무리 숭고한 뜻이 있다 하더라도 한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특별법이 유가족들의 뜻에 못 미친다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의지와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것은 유가족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야권의 정치적 역량의 한계이고, 세력이 불리한 탓이다.
그것은 입으로만 비판을 외칠 뿐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역량 구축에는 관심 없는 이 땅의 양심 세력들의 한계 탓이다. 이런 부족한 역량과 불리한 세를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독단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민주주의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현실세계의 입법을 원하면서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의 정신을 보인다면, 그것은 이 나라를 도덕 국가, 신정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순결한 도덕과 종교의 정신이 잠시 우리 마음을 위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법을 제치고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최종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그 법은 정치 세력들간에 타협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그 시대의 법은 그 시대의 국민의 정신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야 합의안에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와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도 다시 반발이 크다고 한다. 유족들의 반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는 유가족들을 세월호 정국의 최전선으로 내밀어서는 안 된다. 그 이의 끝없는 단식을 볼모로 현 정세에서 이룰 수 없는 조건을 더는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죽음을 불사한 단식을 영웅시해서도 안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타협안을 거부하는 의원들의 비겁함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당신들의 무능함으로 현실 정치의 주도권도 내주고, 세월호 정국도 지지부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풀어야 할 것을 풀지 못한 탓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볼모로 잡힌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진정으로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전에 의원직 총사퇴를 하라. 그 길만이 실종된 정치를 되살리고, 벼랑 끝에 선 유가족들을 살리는 것이다. 이제는 도덕과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나서야 할 때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단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모인다. 이 세계 안에, 그리고 이 세계 밖에서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내던지는 순간, 이 사회는 더 위험한 나락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부디 이제 그만 단식을 중단해주길 바란다. 선생의 숭고한 뜻을 가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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