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복도 못한 채 병실에 누운 '유민아빠'세월호특별법제정촉구 단식 농성 40일째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유가족과 주치의의 설득으로 병원으로 후송 되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희훈
또 한 억울한 생명이 꺼져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때같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죽으면 딸아이 곁에 묻어달라고 통곡하며 40일간 곡기를 끊은 아버지의 목숨이 위태롭다. 성직자와 가수, 정치인 들이 단식을 멈추라고 간청하며 동조 단식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의 목숨을 건 단식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유가족의 뜻이 반영된 특별법 제정뿐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들이 참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땡볕 아래 800km를 걷고,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수백 명의 시민들이 200리 길을 걸어 국회를 찾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넉 달 넘도록 촛불을 밝히고, 지금껏 400여만 명의 국민들이 서명을 해도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
300여 명의 아이들이 왜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진상을 밝히게 해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하는데도 누군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가 됐다. 그렇잖아도 극심한 고통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아버지의 목숨을 건 단식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각계각층의 자발적인 동조 단식으로도 그의 단호한 의지를 꺾을 수 없기에 더욱 괴롭다.
야당 대표 때 한 말 대통령 되니 모른 척 하는 건가시간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그의 단식을 멈추게 해야 한다. 뭐든 나머지는 그 다음이다. 여야로 갈리어 정치적 유불리에 매몰돼 주판알만 퉁기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손은 이미 떠났다.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온 국민들의 분노와 외침은 애써 눈 감고, 유가족의 목숨을 건 단식조차 외면하는 관제 방송과 보수 언론은 애초 기댈 곳이 아니었다.
그 열쇠는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에게 쥐어져 있다. 죽어가는 그를 살릴 수 있는 이도, 그의 단식에 애끓어 하는 많은 국민들을 달랠 수 있는 이도 오직 대통령뿐이다. 그가 단식 중에도 쇠약해진 심신을 이끌고 줄곧 청와대를 찾아간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그가 그토록 간절히 불렀던 그 이름 대통령은, 그러나 두툼한 장막 뒤에 몸을 꼭꼭 숨긴 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작 대변인을 통해 내놓은 공식적인 반응이 이랬다.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문제가 아니다." 말하자면, 내 알 바 아니라는 거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대통령을 거론할 것도 없이 '인간'이라면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는가. 빈말일지언정 '여야가 원만하게 합의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토록 매몰찬 청와대 대변인의 말을 통해 '이게 대체 나라인가'라는 물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그들이 말하는 '국가'와 우리가 떠올리는 '국가'가 아예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과 이념이 다를지언정 구성원인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책무 아닌가.
정확히 10년 전인 2004년 여름, 대통령이 야당의 대표 시절 국민들에게 보여준 당당한 모습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가나무역 직원으로 이라크에 파견됐던 고 김선일씨가 무장단체에 납치돼 피살된 직후, 국회의 교섭단체 연설 때 당시 노무현 정부를 향해 포효했던 장면 말이다. 대통령은 당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분명히 일깨워주었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주지하다시피 고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노무현 정부의 명분 없는 이라크 파병 결정에 따른 결과로 받아들여지면서 우리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는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계기로 작용했고, 반대로 야당 대표였던 현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만든 기회이기도 했다.
야당 대표에서 대통령으로 자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불과 10년 만에 국가의 기본적인 임무가 바뀌기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 답을 해야 옳다. 그것은 당시 그의 당당한 발언에 지지와 성원을 보낸,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입장과 발언이 그때그때 다르다면 어찌 그를 국가의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지금 단식 중인 유가족의 경우는 고 김선일씨의 사례와는 크게 다르다. 고 김선일씨의 경우, 우리 정부가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유가족의 경우는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단식 중인 곳은 대통령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의 청와대가 건너다 보이는 광화문 광장 아닌가.
진정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단식 멈추게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