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엄마가 전입신고 하지 않았던 이유

엄마의 이름으로 불안감과 싸우다

등록 2014.08.31 14:43수정 2014.08.3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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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 기온차가 10도나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걸 보면 벌써 가을 문턱인가 보다. 하긴 38년 만에 가장 이른 추석이 있는 해라고 하니, 가을바람이 이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하면서도 세월이 빠름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빠른 세월 속에서 만난 한 아이, 진(가명)이는 봄에 봤던 그 아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눌했던 발음이 조금은 또박또박해진 데서 오는 느낌이려니 했다.


"이름이 뭐예요?"
"김진~"

이름을 묻자, 아이는 또박또박 자기 이름 세 글자를 말했다. 9개월간 베트남에 다녀왔다는 진이의 발음은 베트남어 특유의 성조가 섞여 있어서 말끝이 올라가며 길게 늘어졌다. 아이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무안하다는 듯이, "김진입니다 해야지"라며 아이를 가르쳤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진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2월 이야기다.

 엄마가 전입신고하는 동안 책을 읽고 있는 진이. 아이는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림책만 보고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한 학기 동안의 학교생활이 끝난 후 낯가림도 사라지고, 말도 자연스러워졌다.
엄마가 전입신고하는 동안 책을 읽고 있는 진이. 아이는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림책만 보고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한 학기 동안의 학교생활이 끝난 후 낯가림도 사라지고, 말도 자연스러워졌다. 고기복
진이는 베트남 국적의 엄마를 둔 아이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진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하지만, 입학 절차를 모르는 엄마의 상담을 받고 그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상담을 받고 우선 진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위치한 학교에 전화를 하여 입학 절차를 알아봤다. 학교에서는 취학통지서를 받았는지 먼저 물었다.

진이 엄마는 취학통지서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취학통지서가 작년 말에 이미 관할 주민센터에서 입학 대상 보호자에게 발송됐고 인터넷 발급도 가능한데 재발급도 가능할 거라고 안내해 줬다.

결국 취학통지서를 받기 위해 가까운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입학통지서 발급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진이 엄마는 현 주소지로 이사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발급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구구절절한 진이 엄마 사연을 전하며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진이 엄마는 8년 전 결혼중개업체의 소개로 결혼한 후 입국했다. 29살 연상의 남편은 이미 네 명의 아이를 둔 일용직 노동자였다.

나이차가 있긴 했지만 진이 엄마는 입국하자마자 임신을 했다.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출산하던 날,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될 때도 아무렇지 않다며 술을 마시고는 드러누워 버렸다. 말도 서툰 산모는 혼자 병원을 찾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진이었다.


임신 때부터 술주정이 심했던 진이 아빠의 술주정은 점점 도를 더해갔다. 일감이 없어 돈이 없다하면서도 술을 매일같이 마셨고, 툭하면 손찌검을 하기가 일쑤였다. 손찌검이 심해져서 쉼터를 찾아갈 때면 진이 아빠는 잘못했다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곤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참다못한 진이 엄마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귀국을 위해 이혼하는 과정에서 진이 엄마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한국에서 살기로 마음을 새롭게 먹었다. 이혼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다. 법원은 남편에게 양육권 포기와 함께 위자료 5백만 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지만, 남편은 지금까지 한 푼도 준 적이 없다.

이혼하고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나왔지만, 남편은 술 먹고 찾아와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행패부리기를 예사로 알았다. 진이 엄마는 그런 남편을 피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멀리 이사를 떠났다. 행여 남편이 자기를 찾아와서 아이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전입신고는 꿈에도 꾸지 않았다. 1년 넘게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였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베트남에 9개월씩이나 보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취학통지서 재발급을 위한 전입신고 하는 과정에서 진이 엄마는 몇 차례나 '아이 아빠가 자신들의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오지 않겠느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결국 딸을 위해 마음을 굳게 하고, 전입신고와 함께 취학통지서 재발급을 위한 혼인관계 증명, 가족관계증명과 임대차계약 등 관련 서류를 하나하나 발급받았다.

"안녕하세요~"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입학했던 진이를 2학기가 시작된 지 두 주가 지나 만났다. 고작 한 학기를 다녔을 뿐인데도 어느덧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몸짓과 반듯한 인사를 하는 아이가 돼 있었다. 말을 시작할 때 베트남어 성조가 약간 남아 있긴 했지만, 아이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은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말투는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진이와 한참을 같이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시선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초에 만났을 때만 해도 아이는 과자를 봉지로 주어도 달랑 하나만 집어 들고, 다시 권할 때까지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을 정도로 숫기가 없었고, 사람과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아이가 눈을 마주보며 인사를 하고, 말을 하고 있었다. 봄에 봤던 모습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이는 알고 있을까? 엄마가 얼마만한 불안감과 싸우며 자기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진이 인사도 잘하고 많이 컸구나. 그렇게 쭈욱 크는 거야. 약속!" 엄마만큼 강한 아이로 야무지게 자라고 있는 진이와 손가락 걸고 응원했다. 엄마는 강하다.
#결혼이주 #취학통지서 #국제결혼 #이주아동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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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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