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민' 간다는 친구, 말리지 못했습니다

"몰상식한 나라에 자식 키우고 싶지 않아"... 정말 이 나라는 세월호를 잊은 걸까요

등록 2014.09.04 11:44수정 2014.09.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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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5개월이 다 되도록 진상규명을 위한 첫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특별법 제정이라는 유가족의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정쟁으로 짓밟히고, 극심한 갈등과 분열 양상은 '망국의 전조'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치적·경제적 양극화 단계를 넘어, 이젠 강자의 뻔뻔함과 약자의 무력감이라는 '정서적 양극화'에 신음하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을 비명에 먼저 보낸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는 국민들의 눈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 하는데, 그들의 등 뒤에서는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힘들다'며 비수를 꽂고 있다. '돈' 때문에 그 많은 어린 목숨을 수장 시켜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돈' 타령이다. 대한민국에서 '경제'는 수백 명의 목숨 정도로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며, 모든 의제를 일순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다.

우리는 매일 TV와 신문을 통해 이런 장면을 '태연하게' 본다. 유가족에게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의기양양한 모습과, 그들의 눈물을 기억하고 닦아주기는커녕 되레 양보하라며 채근하는 종교 지도자를 접하면서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좀 징징거리라며 인터넷을 악담으로 도배하는 이들의 '일베 놀이'는 잔인함보다는 차라리 일상으로 이해된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무디어졌다.'

요즘 들어 인터넷도, TV도, 신문도, 잡지도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그들이 과연 인간인가를 의심케 하는 막말을 듣는 것도, 단식으로 사경을 헤맨 유민 아빠의 깡마른 다리를 보는 것도 괴롭고, 청와대 앞 아스팔트 위에서 경찰에 포위된 채 몇날며칠 노숙 중인 유가족의 지친 모습은 도저히 남일 같지 않다.

그런데도 그런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문화 융성' 운운하며 뮤지컬을 관람하는 대통령의 환한 얼굴을 보노라면 그 어이없음에 한숨을 내쉬게 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에 대해, 차라리 몰랐다면 이렇듯 유가족에게 미안하지는 않았을 거다. 추석이 코앞인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상투어조차 꺼내기 민망한 고약한 시절이다.

뭐라도 해야 겠기에 출퇴근길 1인 시위라도 벌일 양으로 피켓을 만들고 있는데,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간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20여 년 전 대학 시절, 서로 술집을 강의실 삼아 무던히도 어울렸던 친구인데, 내가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로 조금 소원해졌던 터다. 그래도 이따금 서울에 갈 때마다 만나 어김없이 소주잔 기울이는 몇 안 되는 죽마고우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려는 친구

 지난 3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유학 이민 박람회'에서 시민들이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유학 이민 박람회'에서 시민들이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많이 아쉽지만, 더 이상 너랑 술 못 먹게 될 것 같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즐기더니만, 결국 사달이 났나' 싶어 조심스럽게 "(간암) 몇 기"인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무슨 악담이냐며, 올해 말 가족들과 함께 덴마크로 이민을 떠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거라면서 당장은 3년짜리 체류 비자로 나가는 거지만, 취업해 자리를 잡게 되면 무난히 영주권을 얻게 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는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내로라하는 '술꾼'으로 통했지만, 졸업하고 나서야 철들어 공부해 자리를 잡은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학과 공부는 접어놓은 채 오로지 조국의 미래를 걱정했던 '열혈청년'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러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정보통신 분야 기술자로 거듭난 것이다. 또래들 중 가장 잘 나갔던 그가 돌연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로 이민을 떠나려는 이유는 뭘까.

그는 그곳에 친인척이 살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 나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인어공주'와 '덴마크 우유'밖에 없다며 허허실실 말했다. 세계적인 장난감 '레고'가 덴마크의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그가, 겁 없이 그것도 가족을 데리고 이민을 가겠다고 하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이쯤 되면, 이민이 아니라 차라리 난민에 가깝지 않을까. 그의 무모함을 비아냥거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돈키호테 같은 너로 인해 애꿎은 처자식 고생시킬 게 불 보듯 뻔한데, 네가 대학 시절 그토록 오매불망 하던 조국을 등지려는 이유가 대체 뭐냐?"

"아무렴 별 고민 없이 덜컥 이민 결정을 했겠냐? 지난 몇 해 동안 아내와 함께 꿈꾼 게 있어. '단 하루라도 상식이 통하는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초등학교 때는 몰랐는데, 아들 녀석도 중학교에 입학하더니 시나브로 불합리한 사회에 적당히 물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며 결심을 굳혔어. 가족 모두 의기투합한 셈이고 행복하자고 떠나려는 거지만, 솔직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 말하자면, 침몰하는 배에서 나만 빠져나오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불편함 같은 거지. 그래도, 이런 잔인하고 몰상식한 나라에 적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만큼은 살게 하고 싶진 않아."

전화를 끊자 오만가지 감정이 머리를 스쳤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가슴으론 동의할 수 없었고, 그건 이민이 아니고 도피라며 못마땅해 하면서도 그의 후련해하고 들뜬 목소리가 왜 그리 부럽던지. 당장 이민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신세에 대한 자괴감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꿈꾸는 그 어떠한 노력도 결국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열패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 때 마주앉은 술자리 같았으면, 이민을 가려는 그에게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 아니 그 역시 아무리 여건이 허락된다 해도 이민 운운하는 건 꿈조차 꾸지 않았을 것이다. '후세에게 아름다운 조국을 만들어 물려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라며 젊은 시절 호기롭게 외쳐온 그와 나다. 그 다짐과 패기는 다 어디 가고, 도망치듯 이민을 떠나고, 또 그걸 부러워하나.

정말 이 나라는 세월호를 잊은 걸까요

 애국단체, 종교단체 회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열린 세월호농성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애국단체, 종교단체 회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열린 세월호농성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이희훈

그가 가장 경멸한다는 유형의 인간이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변절자'다. 대학 시절 가열찬 '팔뚝질'로 학생회를 이끌고, 후배들에게 민족과 민중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설파했던 이가, 그걸 이력 삼아 정치권에 진입한 후 당리당략에 매몰된 노회한 정치꾼이 된 경우가 그 전형적인 예다. 과거 자신의 신념을 통째로 부정하는 짓이며, 나아가 그에 감화되어 뒤를 따른 수많은 후배들을 욕보이는 행태라는 이유에서다.

그 소신이 지금도 유효한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그의 변명을 듣고 싶어서다. 변절한 정치꾼이나 이 땅이 싫어 떠나려는 그나, 잔인하고 몰상식한 사회에 무릎 꿇은 건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이 고백하건대, 이민 가려는 그를 지금 내심 부러워하는 내 자신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자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거센 바람과 함께 장대비가 퍼부었다. 정성껏 만든 피켓을 찢어낼 만큼 세찬 비다. 길을 나서려는 순간, 딱딱한 스티로폼으로 된 검은색 하드보드지가 바람에 부러져 버렸다. 포장용 녹색 테이프로 애써 다시 붙이고 있는데, 어떤 분이 그 모습을 지켜보시더니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고생한다는 격려 반, 한심하다는 표정 반이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시간은 강자 편이거든요. 이젠 '비주류' 몇몇 곳을 제외하면 신문과 방송에서도 세월호 이야기는 쏙 들어가 버렸잖아요. 결국 '모두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수리 결론짓고 흐지부지되는 수순이에요. 어디 한두 번 겪어보나요. 우리나라 사람들 '냄비 근성'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요? 죽은 아이들과 유가족만 불쌍하지."

이민 가려는 동창생과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 사회는 정녕 희망이 없는 사회일까. 어쩌면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보다 그 이후 5개월 동안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가 정쟁거리가 되고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더 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 아이가 장래희망을 '영어교사에서 이민'으로 바꿨다는 조롱이 다시금 떠올랐다. '후세에게 아름다운 조국을 물려주자'는 소싯적 다짐은 그렇게 무색해졌다.
#세월호 참사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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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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