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내미가 육아용품 박람회장에 들어가는 카드를 뽑아들고 있습니다.
김학현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죠. 제 어머니께서 그러셨듯이, 제 아내가 그러했듯, 제 딸이 그렇습니다. 제 어머니는 언제나 제게 어머니일 뿐이어서 그저 강하기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여자인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집에서 39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3남매를 키워냈으니 말 안 해도 아시겠죠.
그런 어머니를 보던 제게 아내가 생겼을 때 그는 그저 '여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 아내가 딸내미(서준 엄마)를 낳고부터 '엄마'가 되더군요. 물론 아이가 응가를 싼 기저귀를 제가 가끔 갈아주기도 했죠. 그래도 남매를 키워내며 아내가 '엄마'가 되더라고요.
할머니가 돼버린 제 아내는 이제 '억척'쯤은 아니어도 '천생'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란 소리 듣기 싫다지만 어디 그런다고 듣지 않을 수 있는 거랍니까. 제 아내가 '여자'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할머니'로 서서히 진로를 잡아가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아내는 서준이가 응가를 한 보따리 싸면 딸내미의 손이 미치기 전에 지체 없이 치웁니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아이를 안고 가 뒤처리를 말끔하게 하고 나옵니다. 어디 딸내미 키우던 초창기에는 있었던 일인가요. 후에 조금 익숙해졌을 때에야 응가 치우는 게 그런 대로 봐 줄만 했죠. 원래가 비위가 약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자기가 솔선수범하여(?) 손자 녀석 똥을 치우고 있으니 어찌 할머니가 아닙니까. 제 아내가 이리 '여자'이기를 서서히 포기하는 동안 제 딸아이도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서 '엄마'로 자리를 이동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나 이런 걸 알아내죠. 아마 본인들도 모를 걸요.
딸아이가 '아이'에서 '여자'로, 또 '여자'에서 '엄마'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니 우습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 티를 못 벗은 녀석이 벌써 엄마가 되다니?" 그저 제 눈엔 아직 어린아이인데, 서준이에게 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엄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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