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유가족 3자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며 강경투쟁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모여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그런데 이번에는 야당이 알아서 세월호 특별법을 실현 가능성의 영역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당연히 처리되어야 할 세월호 특별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야당과 협상함에 있어서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원칙론을 운운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당위성을 강조했고, 야당은 그 프레임 속에서 실현 가능성을 운운했다.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세월호 특별법이 사법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무능한 야당. 그러니 사람들이 새누리당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당위성과 실현 가능성이 맞서면 양보의 여지가 없는 당위성이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라는 당위성반전은 다음에 일어났다. 그렇게 야당이 나가떨어지고 나서 그 자리에 세월호 유가족이 들어섰다. 비록 여당의 협상 파트너는 아니었지만, 야당을 거치지 않은 유족의 특별법 요구는 근본적으로 이전 여야협상과 그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을 실현 가능성의 영역으로 생각했지만 유가족들에게 특별법은 당위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생때같은 자식들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 그 죽음의 원인이라도 알아야겠다는 부모들의 요구. 과연 세상에 어떤 명제가 이 천륜을 덮을 수 있을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사법체계의 근간이 어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심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겠는가.
앞서 인용했던 KBS의 최근 여론조사는 바로 이와 같은 국민들의 의식 변화를 의미한다. 여야가 협상하고 싸울 때는 그저 하나의 정쟁으로 보였던 세월호 특별법이, 유가족들이 전면적으로 나섬에 따라 이제는 자식 잃은 부모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짓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하여 조급해진 건 이제 정부여당이다. 협상의 파트너로서 야당이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지금. 새누리당이 이전보다 격한 말을 쏟아내고, 내부적으로 다른 의견들이 오고가는 것은 바로 여당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당위성이 세월호 유족들의 당위성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주호영 의원은 아예 대놓고 '여당과 청와대를 막 조사하겠다는 거냐'며 폭언을 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을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의 영역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한다면 그들이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 반대로 물어보자. 그렇다면 정부여당은 여당과 청와대를 조사하지 않겠다고 하면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켜 줄 용의가 있는가?
자식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살펴라정부는 현재 계속되는 세월호 특별법 요구에 맞서 끊임없이 민생경제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말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9·1 부동산 대책, 파격적인 규제 완화 정책 등을 쏟아내며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대중들의 관심사를 그리로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엄청난 가계부채 시대에 또 다시 빚을 내어 집을 사고, 얼토당토않은 4대강 사업으로 국토가 썩어가는 지금 또 다시 난개발을 하라고 부추기는 정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위와 같은 경제 프레임으로 인해 줄어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비록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아무리 화끈하게 '창조경제', '민생경제'를 강조한다 할지라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요구는 어떻게든 지속될 것이다. 왜냐? 바로 그곳에 자식 먼저 보낸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