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클
26살 박래전씨가 바라던 세상. 그리고 그 형인 박래군씨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박래전씨는 폭압적인 국가 권력에 맞서고자 했다. 우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돈과 권력을 지닌 자들의 핍박이 난무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박래전씨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래서였다. 그는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국가 권력에 보란 듯이 자신을 내던졌다.
과연 1988년 만의 일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 일어난 일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재현되고 있다. 생생하고 더 끔찍하게. 26년 전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구에 의해서? 바로 국가권력에 의해서다.
'권력'이 저지르는 비합리적 행동들은 오늘도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밀양의 할머니들은 단지 '정부의 방침' 이라는 이름 앞에 평생 자신이 일구어 놓은 논과 밭을 빼앗겼다.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 국가 권력과 손 잡은 자본가들은 단지 '돈'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경시한다. 그래서 아직도 그 곳에 있다. 봄에 수학여행 간 아이들은 가을인 지금도 저 바다 밑에 '있다'. 내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유가족들은 광화문 바닥에 앉아 '있다'.
그곳에 가면 박래군이 '있다' 박래군씨는 서 있다. 용산에서, 때로는 밀양에서 그리고 지금은 광화문 광장에 발을 내딛고 있다. 아우가 쓰러져간 자리에서 형은 서서 외친다. '사람'을 얘기한다. 국가 권력의 부당함에 인권을 얘기한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외친다. 국민을 경시하는 '당신들만의 나라'에서 동생이 피우고자 했던 꽃을 마저 피운다. 한겨울에 홀로 피는 동화(冬花)처럼 말이다.
아프고 슬프다. 책을 덮고 든 생각이다. 이 두 단어로 다 표현할 순 없겠지만 저자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그저 아프지만은 않다. 슬프지만도 않다. '박래전'이라는 이름이 '박래군'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 '희망'이라는 끈이 됐다. 그래서 나도 해 본다. 부당한 권력이 판치는 야만의 시대에서 '절망'을 한번 지워본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
박래군 지음,
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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