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앞 봉숭아.
김경내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붓대를 잡고 씨름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투박한 손과 얼굴에 골골이 파인 주름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긴 거룩함마저 깃들어 있다.
낙향하고 나서 딱히 전념하는 곳이 없어서 슬슬 서울이 그리워지던 차에 남편이 나에게 붓글씨를 써보라고 은근히 권했다. 벌써부터 마음에는 있었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살살 꾀를 부리다가 읍내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붓글씨 교실에 등록했다.
성격 급한 나와 안 맞아 그만둘까 하다가...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격 급한 나와는 안 맞아서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심각하리만치 열심인 어르신들을 보니 '나도 하면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디 가는 데까지 가 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두 시간짜리 수업이 짧게 느껴지면서 재미가 있다. 강태공은 낚시터에서 세월을 낚았다지만, 나는 그만은 못해도 그 시간만큼은 서울에 두고 온 자식 생각도, 즐겨 찾던 인사동 거리도, 머리 아픈 세상사 근심도 까맣게 잊는다. 급한 성격을 다스리는 데에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연세 많으신 분들 사이에 끼는 게 좀 어색하고 서먹했지만, 이젠 교실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먼저 인사한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는 책상 사이를 슬슬 돌아다니며 지가 뭘 안다고 다른 사람 글씨 쓰는 것을 구경도하고 간섭도 한다.
"어머, 이제 글씨 들어가셨네요. 잘 쓰시네요.""에이, 이게 뭐 쓰는 건가요. 그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