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리필' 아이스커피, 대체 왜 망한 거지?

[40대 아줌마의 알바 체험기②] 3주만에 접은 모란시장 음료수 노점

등록 2014.09.26 18:07수정 2014.09.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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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에 갇힌 개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을 보며 철창을 뜯고 싶었다. 무척 마음이 아팠다. ⓒ 문세경


"왈~왈왈~ 왈왈왈왈~"


달콤한 늦잠을 좀 자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개짖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30분 정도 계속 "왈왈왈~"하는 소리가 나니 슬쩍 짜증이 났다. 문득, 지난 여름 모란시장 우리에 갇혀 있던 개들이 생각났다. 푹푹 찌던 그 날, '제발 나를 이 우리에서 꺼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 개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불쌍한 개들이 보양식으로 바쳐지고 원한 맺힌 영혼이 되어 아침부터 시끄럽게 짖어대는 것만 같았다.

준비했던 취업 시험이 6월에 끝나자 돈이 급했다. 그동안 일을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급했지만 이렇다 할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더위는 몰려오는데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전전긍긍하던 차에 한 지인이 성남 모란시장에서 옷가게를 할 건데 그 앞에서 장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한다. 날씨도 더우니 시원한 냉음료수를 팔면 웬만큼 팔릴 것이라는 솔깃한 귀띔까지 해주면서. 그럴싸한 제안이었다.

그렇게 장사를 시작한 곳은 모란시장 안이기는 하지만 번듯한 가게가 아니어서 노점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에는 노점의 원칙이 있다고 했다. 한 평도 안 되는 땅 위에 서서 물건을 팔거나 먹을 것을 팔 때도 맘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약간의 특혜를 받은 셈이었다. 지인이 하는 옷가게 앞이기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팔기로 한 음료수는 식혜, 냉커피, 미숫가루다. 문제는 식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식혜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식혜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나는 장사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조리법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간단해 보였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장난이 아니었다. 엿기름을 씻고, 앙금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밥을 해야 하고 삭혀야 한다. 다 삭히고 나면 끓여야 한다. 삭히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대부분의 조리법에는 전기밥솥에 하루 정도 놔두면 저절로 된다고 써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못해도 300인분은 만들어야 하는데... 그 많은 양을 삭히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결국 머리를 굴려 생각해낸 것이 방에 보일러를 돌리고 식혜 담긴 통을 놓고 담요를 덥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5~6시간 두면 삭을 것이라 예상하고 실험하듯이 해보았다.


식혜가 삭는 동안에 필요한 도구를 사러 벼룩시장에 다녀왔다. 이것저것 사느라 밤 늦게 집에 왔다. 안방에 둔 식혜를 보니 밥알이 동동 떠있다. 조리법에는 밥알이 동동 뜨면 다 된 것이라고 했는데 딱 그렇게 된 것이다. '처음인데도 어쩜 이렇게 잘 되는 거지?' 의기양양 하면서 내일 식혜를 팔러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커피와 미숫가루는 시장에 가서 타기만 하면 되니까.

"이거 상한 거 아니에요?"... 식혜를 버리다

내가 팔았던 음료수들 정성스럽게 만든 식혜였는데 결국 식혜맛 때문에 망했다. ⓒ 문세경


드디어 식혜를 장에 내 놓았다. 처음이라 옆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께 시식을 부탁했다.

"아니, 무슨 식혜 맛이 이래요? 이거 상한 것 같아."

그럴 리가. 삭히는 시간을 좀 지체했을 뿐 맛은 괜찮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거기다 양도 많은데 쉬었다고 버릴 수도 없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다른 아주머니 한 분이 귓속말로 말해준다.

"소다를 좀 넣어봐요. 그러면 신맛이 좀 덜할 테니까."

나는 "살았다"고 외치며 부랴부랴 소다를 사러갔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식혜통을 들고 가서 소다를 넣었다. 거품이 순식간에 일었는데 그걸 걷어내니 아까 보다는 훨씬 맛이 좋아졌다. 이제는 팔아도 괜찮겠지, 하면서 다시 시식을 부탁했다. 신맛이 덜하니 팔아도 될 것 같다고 한다. 휴.

날씨가 더우니 시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식혜를 많이 찾는다. 신맛이 나지 않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컵에 식혜를 따라서 팔았다. 한 잔에 천 원. 어? 그런데 식혜맛을 보던 손님들이 두어 발 가지 않아 돌아왔다.

"무슨 식혜맛이 이래요? 이거 상한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제 집에서 직접 만든 식혜인데..."
"아무튼 시큼한 맛이 나서 못 먹겠으니 다른 걸로 줘요."
"알겠습니다. 미안해요."

아무 말 없이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10명 중 8명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돌아와 바꿔달라고 했다. 낭패다.

옷가게 지인은 식혜를 계속 팔다간 이미지만 나빠질 것 같다면서 버리라고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화장실에 가서 식혜를 쏟아 부으며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로 눈물을 떨구었다. 어떻게 만든 식혜인데...

식혜를 빼고 나니 냉커피를 많이 찾는다. 가끔은 미숫가루도. 오후 6시 장이 파할 무렵이 됐다.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자니 마음만 급하다. 아직도 통에는 2/3나 남았는데 저걸 언제 다 팔지? 안 되겠다 싶어서 손님을 끌기 위해 목소리를 동원했다.

"자~! 시원한 냉커피와 미숫가루 있어요. 한 잔에 천 원!"

어디서 이런 배짱이 나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첫 장사인데 남으면 안 되니까. 남으면 버려야 하는데 자식같이 만든 저것들을 어떻게 버린담. 차라리 이렇게 해서라도 팔면 다행이지. 마지막엔 오기가 생겨 더 목소리를 키웠다. 냉커피를 주문한 아주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서 "씩씩하긴 한데 목소리가 아기 목소리 같네요" 한다. 식혜를 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목소리까지 따라주지 않는 건가, 원.

거의 파장할 시각이 되었는데도 남은 음료수는 더 이상 줄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남은 음료수는 신고식도 할 겸 앞과 옆에서 장사하는 분들에게 돌렸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고 하면서. 그래도 반 이상이 남은 커피와 미숫가루는 결국 버리고 말았다.

모란시장은 5일장이므로 다음 장날까지는 4일을 쉬어야 한다. 노점 일을 해 본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모란장은 4, 9일이니까 3, 5일 장날인 곳을 수배해서 가보라"라고 알려준다. "오케이"라고 했지만 다른 곳으로 가려면 자리가 문제다. 아무리 길에서 하는 노점이라도 내 마음대로 자리를 펴고 들어갈 수 없는 '원칙'이 있으니까.

모란시장과 날짜가 다른 시장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대신에 메뉴를 추가하기 위해 경동시장, 명동, 종로, 신촌, 건대입구 등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노점에서 일한다는 것은 '한여름 뙤약볕'과 '장마철'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동반한다. 추가메뉴를 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친구는 "노점에겐 여름이 죽음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으니까.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를 뼈저리게 절감하면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무한리필', '부족하면 더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붙이기로 한 것이다. 300ml컵 한 잔에 천 원을 받고 파는데 남으면 안 되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먹어봤자 얼마나 더 먹겠어'라는 생각이었다. 비장의 카드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컵을 들고 와서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모란시장의 수산물 판매장 5일장인 모란시장은 나의 속쓰린 사정을 모르고 활기가 넘쳤다. ⓒ 문세경


드디어 다음 장날이 왔다. 장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장이 서기 때문에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눈을 비비며 '오늘은 기필코 다 팔겠어'라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두 번째 장사를 하러 나갔다. 지인이 하는 옷가게도 동시에 문을 열었다.

아침에는 그럭저럭 견딜만 했지만 정오가 지나고 오후로 들어서자 햇빛이 장난 아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옷가게에도 손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음료수를 찾는 손님도 뜸하다. 오늘도 다 팔기는 힘든 걸까.

'난 정말 운이 없는 걸까'... 누구에게 하소연한담

장사를 시작한 지 3주쯤 지났을 때다. 지인이 할 말이 있다며 만나잔다. 뜸을 들이며 어렵게 입을 열더니 "옷가게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팔려고 한다. 너도 더 이상 장사를 하기는 힘들겠다. 미안하다"고 한다. 헉! 이제 겨우 자리 좀 잡아 갈까 했더니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지? 장사 하려고 들인 돈이 얼마인데?

난 정말 운이 없는걸까. 거리에서 음료수 몇 잔 팔아 보겠다고 발버둥 쳤는데 한 달도 못가 접어야 하는 처지라니. 누굴 붙잡고 신세 한탄을 늘어놓아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다.

"시워원~한 냉커피, 미숫가루가 한 잔에 천 원~!"하며 안 되는 목소리를 틔운 것은 '알량한 자존심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고 철 좀 들어 보려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것마저 묵사발이 되었으니 누굴 불러 술 마시자고 하지? 내 얘기를 들으면 아마도 친구들은 "네가 정말 노점을 했다고?"라며 믿지 않을게 뻔할 텐데….  
덧붙이는 글 40대 아줌마의 알바 체험기 두번째 글입니다.
#노점 #모란시장 #식혜 #한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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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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