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대표 주자 홍시덜익고 떨어진 감을 햇볕에 익히고 있다
김경내
나는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 간 것만 못하다"는 말을 "가다가 중단하면 '갔던 만큼' 아니 간 것만 못하다"는 말로 바꾸어서 가슴 속에 넣어 둔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하던 일에 진척이 없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내 자신을 다독이는 데 이 말을 쓴다.
만약 가다가 중단하면, 간 것만큼 소비한 시간과 정열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약간의 조정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가 봐야하지 않겠는가. 가다가 중단하는 것 역시 조급증 때문이고, 그 조급증은 시름을 불러온다.
지난 여름, 언젠가 수업을 하는데 한 녀석이 느닷없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몇 살이예요?""왜?""흰 머리가 많아서요."거울을 봤다. 눈가에 잔주름은 어느새 기본이 됐고, 머리카락마저 희끗희끗하다. 딸아이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흰 머리카락을 뽑으라고 하자 아이는 난감해하며 말했다.
"엄마, 흰 머리카락 다 뽑으면 대머리 되겠는데요!" 창문 밖 먼 곳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보니 "저것이 다 세월 가는 것이거니" 싶었다. 마음이 서글프고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별별 회한에 입맛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쇼핑도, 사 놓았던 옷이나 보석을 보는 것도 아무 재미가 없었다. 오로지 드는 생각은, "나는 누구인가? 그동안 무얼 했나? 해 놓은 일은 있는가? 불같은 사랑은 해 봤던가?"
'벌써'보다 '아직'을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