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해보니 알겠더라"

후회하지 않으려면 똑바로 진실과 마주해야

등록 2014.09.25 13:57수정 2014.09.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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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우리나라를 방문해 4박 5일 동안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울림을 주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바티칸으로 귀환했다.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가 십자가를 메고 도보로 안산에서부터 진도 팽목항까지 갔다가 대전으로 올라와 교종께 드린 그 십자가도 가지고 갔다. 두 아버지 중 한 명의 요청을 받아들여 손수 세례 성사를 베풀기도 했다.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딘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세월호 유족들을 보듬어 준 교종은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도 바티칸의 교종은 세월호를 기억하며 기도한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가슴에 세월호를 표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고, 리본을 단 채 바티캄으로 귀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본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가슴에 세월호를 표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고, 리본을 단 채 바티캄으로 귀환했다. 오마이뉴스

프란치스코 교종은 당신의 음성으로 직접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들을 선사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임도 분명하게 제시했고, "모든 정치는 정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또 "인간다운 사회와 정의를 이루는 일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협력하고 기여했는지"를 묻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는 전세기 안에서 한 사람이 "가슴의 노란 리본을 떼시라"는 권유를 드렸을 때 단호하고 분명하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마지막으로 주신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말씀은 수많은 그리스도인, 진실과 정의를 갈망하는 모든 국민들의 뜨거운 가치 지표가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 땅에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순 없다. 꼭 그럴 필요도 없다. 위에 소개한 서너 가지 말씀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서너 가지 말씀 안에 모든 메시지 내용이 포함되거나 연계돼 있다.

서너 가지 간단명료한 말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 뜻을 되새기지 못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태반이다. 일반 신자들 대다수는 어마어마한 관심과 호응 속에서 치러진 교황 방한 행사들만 기억할 뿐이다. 눈에 보였던 현상들만 기억하고 되뇔 뿐 메시지 내용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고,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허약성이고 다수 그리스도 신자들의 맹점이다. 어쩌면 그리스도 신자들의 그런 맹점이 비 그리스도인들보다 더욱 두드러질지도 모른다. 오늘날 그리스도 신자들의 사회현실에 대한 무감각한 무관심, 무지와 오인 오해 현상은 심각하다. 일부 신자들의 기득권적인 시각,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가치관들은 오늘의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으로 우리 사회에 '교황효과'라는 말도 생겨났지만, 그 효과가 실제로는 미미하거나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대다수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 유족들을 보듬어 안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메시지들을 접했으면서도 본받는 신자들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 것 같다.


유족들과 연대하거나 유족들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확보된 특별법 제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는 신자들은 많지 않다. 오해의 시선으로 유족들을 보면서 세월호가 빨리 잊히기를 바라는 신자들도 적지 않다.

나는 지난 2008년과 2009년 4대강 파괴 사업 중단을 위한 천주교, 불교 성직자들의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적극 동참했다. 또 2009년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일 봉헌된 '용산미사'에 도 수 없이 참례했다. 그 덕분에 용산 참사 유족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고, 곧 친숙한 사이가 됐다.


그 용산참사 유족들을 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위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생명평화미사'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고, 쌍용자동차 유족들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대한문미사'에서도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대한문 앞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나곤 했다.

용산참사 유족 중 이제는 천주교 신자가 된 자매님 한 분이 토로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전에는 정부를 비판하거나 항거하는 사람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좋지 않은 눈으로 봤다고 했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는 말도 했다.

용산 순례 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위한 천주교 불교 성직자들의 '오체투지 순례기도' 행렬이 용산참사 현장을 지나던 2009년 5월 18일 용산참사 유족들도 오체투지기도에 참여했다.
용산 순례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위한 천주교 불교 성직자들의 '오체투지 순례기도' 행렬이 용산참사 현장을 지나던 2009년 5월 18일 용산참사 유족들도 오체투지기도에 참여했다. 지요하

그러다가 용산 참사로 가족을 잃고 참혹한 슬픔을 겪다보니 과거에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태도로 살았는지를 깨닫게 되더라고 했다. 과거에 자신이 무지한 상태로, 이기적인 자세로 살았음을 하느님께 고백하고 참회하는 마음 때문에 거리 미사에 더욱 열심히 나오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마디로, '당해보니 알겠더라'는 것. 누구든지 불시에 무슨 일을 당할 수 있는 세상이니, 무슨 일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알지 말고, 무슨 일을 당하기 전에 세상을 향해 열린 눈을 갖고 미리미리 막아낼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오늘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똑같은 형태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언제 어느 때 누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가공할 재앙들을 관성적으로 장만하는 가운데 사회가 돌아간다. 깨어 있는 눈이 필요하다. 프로야구에 열광하고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집중하더라도 사회를 제대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진짜와 거짓을 구별하는 눈을 길러야 '당해보니 알겠더라'는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각 분야마다 사이비들과 거짓들이 판을 치고 있는 암울한 세상을 두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보며 살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용산참사 유족 #천주교 거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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