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앞 '1352일' 1인시위... 오늘 마칩니다"

[현장] 삼성 사회적책임 요구 시민모임, 3년 8개월간의 활동 마무리

등록 2014.09.25 17:55수정 2014.09.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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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3일 광주 동구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삼성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삼사모)'이 3년 8개월 동안 했던 1인시위를 25일 마무리했다. 사진은 그동안 1인시위를 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모은 것이다. ⓒ 소중한, 임영규, 박고형준


때론 한 방의 강한 충격보다 소소하지만 꾸준한 울림이 더 큰 힘을 낸다. 저명한 인물의 결의에 찬 문구보다 시민 여럿의 조잘거리는 외침이 더 소중할 때가 있다. 특히 망각과 와해를 목적으로 한 상대에겐 '너와 나, 우리'의 꾸준한 기억만큼 센 무기가 없다.

1352일. 시민 100여 명이 자신의 시간과 힘을 모아 '글로벌 기업 삼성' 앞에 선 날짜다. 2011년 1월 13일 광주 동구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삼성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아래 삼사모)'이 3년 8개월 동안 했던 1인시위를 25일 마무리했다.

말 그대로 '시민모임'인 그들은 특정한 구심점과 종착역 없이 1인시위를 이어왔다. 처음 시작할 땐 하루에 한 번, 나중에는 매주 목요일에 한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인시위를 진행했다.

마지막 1인시위였던 이날도 특별한 격식은 없었다. 평소처럼 낮 12시 삼성생명 건물 앞에 모여 한 시간 동안 피켓을 들고 헤어졌다. <오마이뉴스>가 삼사모의 마지막 시위를 함께했다.

"나서지 않으면 안됐기에... 변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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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3일 광주 동구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삼성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삼사모)'이 3년 8개월 동안 했던 1인시위를 25일 마무리했다. 추교준씨가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 소중한


이날 마지막 시위에는 시민 7명이 모였다. 이들은 "삼성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희귀암으로 145명이 병에 걸려, 56명이 죽었습니다", "삼성 X파일 전국민 공유하기, 떡값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또 하나의 가족을 버렸습니다"라고 적힌 두 개의 피켓을 나눠들었다.

삼사모가 1인시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 노동조합이 생겼고, 삼성전자가 산업재해 노동자에게 사과하며 보상을 논의하고 있다(관련기사 : 두 아들의 아빠, 난생처음 노조 가입한 까닭,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과... 합당한 보상할 것"). 반도체공장 산업재해를 주제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탄생하기도 했다.


임씨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지막 1인시위를 예고하며 "광주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1인시위가 무슨 영향력이 있었겠는가"라고 썼다. 그러면서 "다만 나서지 않으면 안됐었기에 끝을 두지 않고 시작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우리 때문에 변화가 있었다곤 할 수 없지만 시민의 변화를 고스라니 현장에서 느낄 수는 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시민들이 이날 마지막 시위 현장의 피켓에 주목했고, "56명이 죽었습니다"라는 내용을 보고선 "저렇게 많이 죽었나"라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박은영씨는 "초기에는 '너희가 대한민국 산업의 주역인 삼성을 깔 수가 있냐'라는 비난이 수두룩했다"고 떠올리면서 "전에 비해 지금은 삼성을 대표로 한 재벌문제가 많이 공론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계기로든 또 만날 것... 시민의 힘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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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3일 광주 동구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삼성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삼사모)'이 3년 8개월 동안 했던 1인시위를 25일 마무리했다. 이날 모인 시민들이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 소중한


1352일간 삼성생명 앞에서 피켓을 든 시민은 약 100명. 1인시위 외에도 삼사모는 삼성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기도, 간담회에 불려가기도 했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지킴이) 활동가를 불러 강연회를 열어 전남대 대강당을 가득 채운 적도 있다

또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지점에 가 국수를 말아먹었고(관련기사 : 삼성 노조, 삼성 앞마당에서 국수 말아먹은 까닭), "고등학생들이 위험한 노동현장에 취업 알선을 받지 않게 해달라"며 광주시교육청에 여러 차례 항의하기도 했다.

"마지막이라 아쉽긴 한데 언제, 어떤 계기로든 이 사람들을 또 만날 것 같아요."

이날 오후 1시 초기부터 꾸준히 시위에 참여했던 추교준씨가 마지막 시위현장을 떠나며 말했다. 추씨의 말대로 이날 시위는 마지막이지만, 마지막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처음 1인시위를 시작했고 이날 시위까지 참석한 임명규씨 역시 추씨와 같은 감정이다. 임씨는 "3년 8개월의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다"며 "(오늘로 삼성 앞 1인시위는 끝났지만) 우리가 다른 자리를 만들면 (그분들은) 언제든지 다시 모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삼성 앞에서 시민 개개인은 너무 작은 존재지만 변화를 이끌어 내고, 이끌 수 있는 건 그 시민들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많지만 삼성조차도 조금은 바뀐 모습을 보고 시민들이 나서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삼사모는 10월 3일 지리산에 오르며 마지막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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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3일 광주 동구 삼성생명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삼성의 사회적책임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삼사모)'이 3년 8개월 동안 했던 1인시위를 25일 마무리했다. 삼사모 회원들이 든 피켓 너머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소중한


#삼성 #사회적책임 #노조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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