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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나주 신촌마을 주민들의 공동 급식. 농번기 때마다 빚어지는 여성농업인들의 이중고와 부족한 농촌의 일손을 덜어준다. ⓒ 이돈삼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김치와 오이무침을 접시에 덜어 담는다. 호박과 고사리·취나물도 따로 놓는다. 한켠의 계란말이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조기가 노르스름하게 구워지고 있다. 하얀 쌀밥과 쇠고기무국도 상 위에 올려진다.
마지막으로 포도 한 송이씩 놓였다. 상마다 진수성찬이다. 시쳇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다. 그 사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어서 오시요."
"얼릉 앉으쇼."
"배고프네. 아침을 일찍 먹었더니."
"어여 듭시다."
네댓 명씩 한 상에 둘러앉자 식사가 시작된다. 방안에 금세 스물 댓 명이 모였다. 너른 방이 왁자지껄해진다. 지난달 24일 '나주배'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나주시의 다도면 신동2리 신촌마을 회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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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신촌마을의 공동급식 상차림. 소고기무국에 갖가지 반찬이 올라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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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전남 나주시 다도면에서다. ⓒ 이돈삼
"호박노물이 맛깔지네. 이거 누가 무쳤다요?"
"김치가 마침 맞게 익었네."
"나는 오이무침이 젤 맛나그만."
"조구도 맛있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네그려."
"소주 한 잔 하믄 끝내주겄는디, 여기 소주 한 병만 주쇼."
저마다 칭찬의 말 한 마디씩 던지며 식사를 한다.
"얼매나 좋소? 날마다 잔칫날이요. 일하는 사람들 편해서 좋고.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 만나서 안부도 묻고. 참 좋은 사업이여. 이것이."
한기준(70) 어르신의 얘기다.
한씨 어르신이 "참 좋은 사업"이라고 한 것은 '마을 공동급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 공동급식은 농번기 때 마을주민들이 한데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사업이다. 나주시가 농촌마을 주민들의 일손을 덜어줄 목적으로 도입했다.
공동급식이 실시되기 전에는 여성 농업인들의 번거로움이 컸던 게 사실이다. 들녘에서 일을 하다가도 점심 때가 되면 집에 들어가서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 다시 일터로 나가야했다. 집안일과 농사일로 이중고를 겪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이조차 번거로워 끼니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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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앞에 앉은 이가 한기준 어르신이다. ⓒ 이돈삼
마을 공동급식은 농번기 때마다 빚어지는 여성농업인들의 이중고와 부족한 일손을 덜어주자는 데 목적이 있다. 농촌마을의 공동체 형성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이 공동급식을 나주시 관내 150개 마을에서 시행하고 있다. 나주시는 이 사업에 올 한해 3억9000만 원을 편성했다. 한 달 20일, 급식인원 20명 기준으로 마을당 130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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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포도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왼쪽 어르신이 오들댁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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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한 다음 방에 둘러앉아 마을의 대소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마을 주민들도 반기고 있다.
"한데 모타서 같이 먹응께 노인들이 좋아해.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젤로 좋아하제. 우리도 좋고. 여러모로 좋당께."
이름 대신 '오들댁'이라고 택호를 밝힌 한 할머니(77)의 얘기다.
"일이 바쁠 때는 누가 집에서 차분히 점심을 차려 묵겄어? 대충 묵고 나오제. 근디 여그서 같이 묵응께 얼매나 좋아? 맛도 있고. 농사철만 할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했으믄 좋겄소."
박상순(73) 마을 노인회장의 바람이다.
"행정에서 돈만 준다고 다 하가니? 안 한 마을이 더 많애. 이장하고 부녀회장의 맘이 잘 통해야 해. 우리 마을처럼."
한 어르신이 옆에 있던 노명숙(59) 이장을 보며 공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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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숙 신촌마을 이장. 마을의 공동급식을 이끌고 있다. ⓒ 이돈삼
"그것도 있고요. 부녀회장(박민자·59)허고 저하고 친구여서 뜻도 잘 맞고요. 또 시에서 주는 돈만으로 부족한디. 어매들이 집에서 드시던 찬을 갖고오고. 호박도 따오고, 오이도 따온께 하제라."
느닷없는 칭찬에 손사래를 치던 노명숙 이장이 말을 이어받는다.
"마을 대표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마을에서는 번거롭다고 마다하거든요. 어르신들이 체크카드만 써야하는데, 그것도 불편하고요. 사업비를 정산하려면 어쩔 수 없거든요."
마을 공동급식 실태 현장 점검을 위해 신촌마을을 찾은 나주시청 농업정책과 김양기 주무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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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마을 주민들이 김양기 주무관의 얘기를 듣고 있다. 김 주무관은 나주시의 마을 공동급식을 담당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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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회관에 붙은 칠판. 나주시에서 나눠준 마을 공동급식 추진 안내문이 걸려 있다. 칠판에 적힌 이름은 날짜별 공동급식을 담당할 식사당번들이다. ⓒ 이돈삼
마을 공동급식 지원에 전라남도가 팔을 걷고 나섰다. 지원예산에 도비 30%를 보태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전남도는 올해 처음으로 추가경정예산에 지원비를 확보했다. 이는 이낙연 도지사가 지방선거 때 한 약속이기도 하다.
마을 공동급식은 그동안 나주와 순천, 고흥, 곡성, 영암, 함평 등 6개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해 왔다. 여기에 해남과 강진, 여수 등 3개 시·군이 지원해 올 가을 9개 시·군 253개 마을에서 시범 실시한다. 20명 이상이 15일 동안 공동급식을 할 수 있도록 120만 원씩 지원한다. 사업비는 시·군비를 포함해 모두 3억300만 원이 투입된다.
전남도는 내년부터 공동급식 지원 사업비를 본예산에 편성하고 모든 시·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25일 동안 실시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여성 농업인들의 집안일과 농사일에 따른 일손을 덜어주고 지역공동체도 회복하기 위해서다. 농촌에서 사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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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신촌마을 회관 모습.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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