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모르는 짜밤... "맛이 죽여줘요"

아파트 보도블록에 나뒹구는 짜밤... 신기해 하는 아이들

등록 2014.10.09 18:28수정 2014.10.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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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정원수로 심어진 ‘구실잣밤나무’ 열매인 짜밤은 열매 맛이 고소해 꿀밤 나무라고 부른다. 보도블록 밑에서 잠시 주웠더니 한주먹이다. ⓒ 심명남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었다. 벌써 아침저녁 기온이 차갑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절기가 빠른 탓에 추석이 지난 지 한참이지만 이제야 추수철이 찾아왔다.


결실의 계절이다. 윤달 때문에 추수가 늦은 요즘 시골은 추수철이다. 그래서 일손이 부족하다. 산에 열린 밤을 딴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감을 딴다. 진짜 가을인데 도시에 살면 가을걷이가 뭔지 잘 모른다. 옷이 바뀌는 패션만으로 계절의 바뀜에 동화될 뿐이다.

추억의 그 맛 '짜밤'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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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보도블록에 짜밤이 널렸다. 이래저래 발길에 걷어차인 귀한 짜밤은 맛이 차지고 고소하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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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엑스포힐스테이트 1단지 정원수에 심어진 구실잣밤나무에서 짜밤이 열렸다. ⓒ 심명남


아파트 정원을 거닐었다. 평소 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아파트 단지 정원수가 새롭게 보인다. 정원수가 이렇게 많았나 싶다. 그렇게 보도 블록을 거닐며 발견한 열매가 있다. 바로 '구실잣밤나무'다. 우리 동네에선 어릴적 이 나무를 잣밤, 즉 '짜밤나무'라고 불렀다. 보도 블록엔 도토리처럼 생긴 '짜밤'이 널려있다. 이래저래 사람 발길에 걷어차인 짜밤이 거리에 나뒹군다. 완전 헐이다.

"사람 몸에 참 좋은데, 참 귀한 열맨데 누구 하나 줍는 사람이 없네..."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 주변에 가로수로 심어진 짜밤나무. 놀기 바쁜 요즘 아이들은 짜밤이 뭔지 잘 모른다. 짜밤을 혼자 주웠더니 순식간에 한 움큼이다. 이런 귀한 짜밤을 혼자 줍기엔 아깝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알려줘야겠다 싶어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불렀다.


"애들이 이 열매가 뭔지 아니?"
"몰라요."
"짜밤이야. 이거 먹으면 정말 맛있어."
"어~ 맛이 죽여줘요. 아저씨 이거 어디서 따요?"

짜밤을 맛본 아이들. 맛있다고 야단이다. 어디가면 있냐고 묻는다. 저 나무 밑에 가면 많다고 가르쳐 주니 후다닥 뛰어간다. 난생 처음 보는 짜밤을 신기해 하는 아이들. 짜밤 줍기에 정신없다. 훗날 이 아이들도 짜밤 줍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으려나.

2년에 한 번 맛보는 짜밤... 향수에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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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으로 먹는 짜밤은 맛이 고소하다. 구실잣밤나무에서 열린 짜밤 그리고 반으로 쪼갠 모습. ⓒ 심명남


열매 맛이 고소해 '꿀밤나무'라고 부르는 짜밤. 제주에선 '재밤나무'라 부른다. 해양성 기후에 잘 자라는 짜밤나무는 주로 바닷가 산기슭에 뿌리를 내린다. 특히 제주도 서귀포시에 가면 가로수로도 흔하다. 키가 크고 수백 년씩 장수한다. 5월쯤 제주도에 가면 나무에서 풍기는 꽃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꽃이 피면 남자의 정액 냄새 비슷한 향기가 퍼진다. 5~6월에 꽃이 피고 이듬해 10월에 열매가 익는다. 열매는 꼭 해거리를 해서 2년에 한 번씩 맛볼 수 있다.

어릴 적 짜밤에 얽힌 추억이 있다. 당시 소여물을 먹이러 산에 가면 짜밤을 따먹느라 소 뜯기는 일은 뒷전이다. 소는 내팽개치고 짜밤 따기에만 바쁘다. 그러면 누렁이는 어느새 남의 밭 고구마 순을 다 뜯어먹어 밭주인에게 난리가 났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하지만 나무 높이가 15미터까지 자라 짜밤을 따려면 높은 곳까지 올라야 한다. 나무에 오르는 데는 원숭이띠인 작은 형님이 선수였다. 무서워 나무를 잘 못 타는 동생에게 높은 나무에 올라 짜밤을 따던 형님이 혹시 떨어지면 어쩌나 왜 그렇게 걱정이 돼던지...

꿀밤처럼 맛좋은 짜밤. 꼭 알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열매는 날로 먹어야 제 맛이다. 먹는 방법은 짜밤을 입으로 깨물면 반 토막이 난다. 겉은 검은데 속을 까보면 하얗고 차진 열매가 나온다. 맛이 생밤 먹는 것보다 달콤하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이런 맛에 하나씩 까먹으면 손에 쥔 한 주먹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밤 맛. 요즘 애들은 잘 모를 거다. 이 글 읽고 아파트 정원수에 열린 짜밤을 서로 차지하려 싸움 일어나는 것 아닌지 몰것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짜밤나무 #구실잣밤나무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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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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