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그룹홈 아이들이 수원으로 몰려간 까닭

[동행취재] 안성 그룹홈의 수원 나들이, 그들과 함께 하다

등록 2014.10.20 18:06수정 2014.10.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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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안성의 그룹홈(맑은물, 즐거운집, 꿈나무) 아이들과 어른들이 수원을 가기 위해 모였다. 이 설레는 그룹홈(아동복지 공동생활가정)의 수원 나들이에 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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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그룹홈사람들 이날 기자가 따라 붙은 안성그룹홈 사람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송상호


지겨운 스멜(?), 그 뒤에 숨겨진 이유가 있다

승합차 안에서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재잘댄다. 아이들은 사실 목적지에 대한 관심보다 옆에 있는 친구와 음식에 더 마음이 간다. 나들이에 빼놓을 수 없는 김밥과 간식들은 아이들에게 엔돌핀을 마구 선사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바로 경기중소기업지원 센터였다. 그룹홈 친구들 중 한 아이가 입구에 들어서자 "선생님, 건물을 보니 지겨운 스멜(냄새)이 팍팍 나요"라며 농담을 했다. "정말로 그런지 우리 한 번 들어가 보자"며 지도교사가 응수하며 한바탕 웃는다. 농촌도시 안성에 사는 친구들에게는 으리으리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센터의 경기홀에 다다르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거기에 모여 있다. 그들이나 안성친구들이 여기에 온 목표는 하나다. 음악회다. 그것도 '경기도 아동청소년 그룹홈 음악회'였다.

경기도에는 120여 개의 그룹홈이 있다. 이날은 40여 개의 그룹홈이 참석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 그룹홈 어른들도 바빠진다.


그런데 음악회가 시작되기 직전, 아이들 표현대로 지겨운 스멜(?)이 풍긴다. 국회의원, 경기도의원 등 소위 내빈들이 소개되고, 그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격려사를 한다. 왜, 아이들 행사에 저런 걸 할까. 하지만 이들의 방문이 오늘 우리가 모인 취지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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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듀엣 가수 애드 듀엣 여성 그룹 가수 애드의 신나는 댄스곡이 나오자 장내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신명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 송상호


세대를 넘어 "우리는 가족입니다"를 확인하다

여성 듀엣 그룹 '애드'가 음악회 문을 연다. 젊은 누나(혹은 언니)의 등장에 순간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신명나는 댄스곡에 아이도 어른도 박수와 환호로 장내를 가득 채운다. 호응으로만 보면 아이돌 그룹을 능가하는 분위기다. 그들과 헤어질 때 나오는 아쉬움의 탄성이 이를 잘 말해준다.

통기타 듀엣인 '논두렁밭두렁'의 멤버 가수 윤설희가 등장했다. 아이들의 눈에는 이제 중년이 된 가수가 엄마처럼 보일 게다. 그녀가 들려준 노래 '다락방'은 원장이나 지도교사 등의 어른들을 잠시 추억으로 인도한다. 이 순간만큼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아이 같다.

가수 서유석이 등장할 때, '어른들의 아이 같음'은 극대화 된다. 환호성과 박수는 그 시절 오빠 부대를 연상케 한다. 아이들도 같이 호응한다는 점이 신기하다.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가수지만, 아이들도 벌써 분위기에 취했다. '가는 세월'이 흐르고, '아름다운 사람'이 이어지니, 순간 서유석 콘서트장이 된 듯 하다. 칠순이 된 서유석의 카리스마는 여전한 듯하다.

피날레는 그룹홈 청소년들이 모인 행복나무 소년소녀합창단이 장식했다.

"동산 위에 올라서서 파란 하늘 바라보며, 천사 얼굴 선녀 얼굴 마음속에 그려 봅니다."

아이들의 청아한 소리에 어른도 아이도 순간 천사 얼굴이 된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동요보다 가요를 좋아하는게 사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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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무 소년소녀합창단 이 합창단은 30명의 그룹홈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다. 공연하는 아이들도 관람하는 아이들도 노래로 꿈을 키워가는 모습이라 하겠다. ⓒ 송상호


여기는 신선한 '시위 현장'이었다

이런 행사가 왜 기획됐을까. 행사를 기획한 성기만 목사(안산 그룹홈 연합회 회장)는 기자를 보자마자 "알리려고요"라고 답한다. 도대체 뭘 알리려고?

"그룹홈이 무엇인지, 뭐 하는 곳인지 국민들이 잘 모르는 건 일정부분 우리들의 책임도 있다고 자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기로 했다."

그가 말하는 대한민국 그룹홈 현실이 이렇다.

"우리 그룹홈은 법에 따라 대규모 양육시설로 규제되고, 지원은 소규모 양육시설 수준으로 받는다.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와 원장들의 인건비는 바닥수준이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정치인들과 공무원들도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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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만 목사 이 행사를 기획하며 동분서주 하는 성기만 안산 그룹홈 연합회장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 행사의 취지를 "우리를 세상에 알리고, 우리를 지켜나가기 위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 송상호


아하, 그랬구나. 쪼개기 힘든 시간을 간신히 쪼개어 아이들과 수원으로 모여든 이유, 소위 내빈들을 불러 감사패를 전달한 이유, 그건 바로 그룹홈을 알리고, 그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런 시대에 그룹홈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 셈이다.

그동안 그룹홈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아이들 건사하기에 바빴다. 정신없이 달려온 10여 년 세월에 묻혀 이젠 각 그룹홈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그들이 일제히 모여 시위를 하지 못하는 건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다. 각 처소에서 아이들을 돌아보는 어른들은 한 번 모이기조차 어렵다.

이날 행사는 '참 신선한 시위'라는 느낌이다. 피켓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고, 고함치는 기존 시위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음악회를 하고, 내빈들을 부르고, 언론매체를 부른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우리를 지켜 달라"며 한 목소리를 낸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우리는 가족입니다"였다. 직계 자녀에만 목을 매며 사는 우리 사회에 "우리는 가족입니다"라고 외치며 "공동체 회복"을 부르짖고 있다. 그룹홈, 말 그대로 공동가정은 우리 사회가 모두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행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어른들과 아이들은 뭔가 큰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해 보인다.
#청소년 그룹홈 #그룹홈 #경기도 아동청소년그룹홈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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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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