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이 당신에게 인사를 건넸다는 뜻이 담긴 '나마스테' 인사말을 건네는 시크교 할아버지.
송성영
다람살라를 뒤로하고 암리차르로3박 4일 동안 다람살라를 다 둘러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델리에서부터 동행한 다섯 명의 동료들은 30여 일이라는 짧은 여행 동안 둘러볼 곳이 많았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나의 인도 일정은 그들과 달리 150여 일. 일정에 쫓겨 서두를 일도 없었지만 얼떨결에 젊은 동료들을 따라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암리차르로 향하는 7인승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비는 여섯 명이 나눠서 부담했다. 버스비와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중간중간 원하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가며 쉴 수 있었다.
나는 본래 다람살라나 암리차르를 마지막 여정지로 잡아 놓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모든 일정이 젊은 동료들을 따라 나서고부터 뒤죽박죽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떠랴' 싶었다.
시크교도들이 대부분인 암리차르로 향하면서 장대한 체구에 긴 수염, 흰옷에 터번을 두른 시크교 사람들을 떠올렸다. 시크교 사람의 모습은 인도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박혀 있기도 했다.
깊은 신앙심으로 수백 년 동안 전통을 고수하고 살아가는 시크교인들. 나는 그 유명한 암리차르의 황금사원보다는 인도의 다양한 종교 중 하나인 시크교를 만나보고 싶었다. 시크교도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암리차르는 1919년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을 외치는 인도인들에게 영국군이 자행했던 대학살의 현장이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시크교 분리 독립운동의 본거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