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음악다방.
반지윤
'다행이다. 여기는 애들이 무대로 몰려들지는 않겠구나.'무대를 향해 아이들이 질서 있게 앉아있는 모습을 창문너머로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판교 환풍구 사고를 듣자마자 아이돌 그룹의 팬미팅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딸아이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가수를 눈앞에 둔 우리 딸아이와 다른 팬들이 흥분하면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게다가 장소가 롯데아울렛 고양터미널점이라 더 불안했다. 고양터미널은 지난 5월에 화재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하던 쇼핑을 그만두고 팬미팅 장소 옥상정원으로 부리나케 올라갔다. 딸아이가 어디쯤에 앉아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그날 딸아이와 나는 질서있게 행동하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과 함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판교 사고는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더 잘 보고 싶은 마음으로 사람들이 환풍구 위에 올라갔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환풍구가 붕괴되어 일어났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면 적어도 나는) 환풍구와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걸어 다닌다. 간혹 인도보다 더 넓은 환풍구를 볼 때도 있다. 걸을 때 겁은 났지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쇠붙이로 되어 있는 환풍구는 튼튼하게만 보였고 위험을 알리는 경고판은 본 적이 없다. 밟아도 되는 줄 알았던 환풍구였다. 판교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환풍구 위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하고, 대학 새내기를 축하하는 자리의 지붕이 무너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공사현장에 불이 나고, 회사 앞에서 열린 축제에서 환풍구가 붕괴되고… 상상도 하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나고 사람들이 쉽게 죽는다.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내가 아무리 몸을 사리고 조심해도 소용없다. 내가 살아있는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 아니 집에 있어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인 이 땅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 버겁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막지 못하는 사회, 사고를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것도 안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사회, 성수대교 사고 후 20년이나 지났지만 나아진 것이 전혀 없는 사회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두렵고 안타깝고 죄스럽고 우울하다.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온 세상을 사랑하다 날리는 낙엽 따라서 떠나가 버렸네 울어 봐도 오지 않네 불러 봐도 대답 없네 꿈속에서 영원히 잠이 들었네-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노랫말 일부
1970년대 밴드 '휘버스'가 부른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은 저세상으로 먼저 간 친구를 추모하기 위한 노래로 알려졌지만 살아남은 친구를 위로하는 힘도 강하다. 애잔한 노랫말을 밝게 표현한 멜로디 덕분이다. 노랫말처럼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온 세상을 사랑하던 친구는 가버렸다. 이 노래는 울어도 불러 봐도 대답 없으니 더 이상 죽은 사람 생각에 눈물짓지 말고 힘을 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해야겠다. 지금 여기, 생지옥에서 노래가 주는 위로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두렵고 안타깝고 죄스럽고 우울하다. 이 노래를 도대체 몇 번을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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