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윤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주로 청각을 사용하지만, 추억은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도 그렇다. 멜로디보다는 노래와 얽힌 사연과 상황이 먼저 생각나거나 아니면 동시에 떠오른다.
중학생이 된 오빠가 가창 시험에 대비해 '어제 온 고깃배가'로 시작하는 노래를 60분짜리 공테이프에 녹음하고 듣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던 어느 햇살 좋은 일요일. 동생과 따뜻한 방바닥에 담요를 덮고 앉아서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서로 음정과 박자가 틀렸다며 티격태격 부르던 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개구리 소년 왕눈이> 주제곡으로 피리 연습하던 일.
유행가에 익숙하지 않던 내게 선명하게 각인된 대중가요가 있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다.
초등학교 4학년 학급 오락시간이었다. 70명 가까운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서 앞에 선 두 친구를 주목하고 있었다. 평상시 얌전하고 조용했던 친구들이었다. 한참을 쭈뼛쭈뼛대던 두 아이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칠판을 향해 섰다. 손을 허리에 올리고 다리를 모으는 등 자세를 가다듬었다. 두 아이가 갑자기 뒤로 돌아 우리를 바라 봤다. 발을 좌우로, 오른팔을 옆으로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아~ 아~ 제3한강교 밑을…" 두 손과 두 발이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때론 절도 있게 움직였다. "두루뚜루뚜 하" 하는 부분에서는 하늘을 향해 오른팔을 쭉 뻗어 올렸다. 생김새도 키도 달랐던 두 친구는 그 순간 똑같아 보였다.

반지윤
그 오락시간이 지난 어느날, 그중 한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 친구랑 놀다가 무심코 바라 본 건너편 집에 그날 그 노래를 불렀던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마루에 걸린 커다란 유리 거울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작열하던 태양이 수그러들며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그 시각, 거울 앞에서 춤추는 자신을 보며 춤을 추고 있던 그 아이. 지금도 그때 그 광경이 영화 속 정지화면처럼 뚜렷하게 그려진다.
서울에 와서 <제3한강교>가 '한남대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노래가 들리거나 한남대교를 지나갈 때면 그 두 장면과 그 애가 생각난다.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흘러만 갑니다, 흘러만 갑니다' 거울을 보며 춤을 추던 친구의 이름과 얼굴은 흘러가 버렸지만, 두 개의 장면은 흘러가지 않고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 무엇이 내 시선을 사로잡아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걸까?
오늘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귀 기울여 다시 들어본다. 내 기억 속 그 노래보다 느리고 애절하다. 그런데도 마음속에서 몸이 리듬을 타고, "하"에서는 오른손이 하늘로 뻗어 올라간다. 춤추던 친구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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