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쓰는 한국의 장성들... 정말 꼴불견입니다

[미운 오리새끼의 월남참전기]

등록 2014.10.27 14:22수정 2014.10.2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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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200여 년의 짧은 역사 동안에 자기 나라 일로는 한 번도 전쟁을 해본 적이 없다. 비록 2차 대전 때 일본이 호주의 북쪽 끝에 있는 다윈이라는 시골 동네에 연습 삼아 폭격을 한 번 했기는 했지만 말이다. 호주 사람들은 일본의 잠수함이 시드니 항까지 침입한 것을 보고 기겁을 해서 항의 입구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4킬로미터를 쇠로 된 그물을 쳤단다. 참, 전쟁은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게 만든다.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 때 서울근교 북쪽 전체에 인민군 탱크 못 들어오게 한다고 논바닥에 흉물스럽게 철근 콘크리트 장애물 설치해 놓은 것이 생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에 빠지지 않고 끼었다.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전쟁을 많이 한 나라인 '큰 집' 영국의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부득이한 면이 있다. 또 자기 나라에서 전쟁 날 일이 없으니 훈련을 하기 위해서도 그러는 것 같다. 밤낮으로 침략만 당하고 살던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사실 실지 전투보다 더 좋은 훈련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호주는 군대에 갔다 온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만큼 대우를 해준다. 특히 전쟁에 참가한 것은.

1차 대전 때 터키군과 싸울 때 터키의 갈리폴리라는 해안에 상륙작전을 하다가 오스트렐리아와 뉴질랜드 연합군 만 명 정도가 전멸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그 날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 오스트렐리아(AUSTRALIA)와 뉴질랜드(NEWZEALAND)의 머리글자를 따서 우리로 말하면 충무공 정신쯤 되는 'ANZAC(안작)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전투에 차출되어 가서 이긴 것도 아니고 몰살을 당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가 짧은 나라라서 이렇다 하게 내세울 정신적 가치가 없다 보니 그런 것인 모양이니 이해해 주어야지 어떻게 하겠나? 그러나 여기에는 자기들이 유럽의 일원이라고 하는 정신적 유대감이 크게 작용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안작데이의 행진은 현역 군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퇴역 군인들이 가슴에 훈장과 기장을 주렁주렁 달고 늙은 몸을 이끌고 참여한다. 수만 명의 늙은 군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혹은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대열을 이루어 행진을 하는 것은 관광객들에게도 큰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보통 아침 9시부터 1시까지 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행진이 벌어지는데 실제 개인의 행진 시간은 30분 정도 밖에 안 된다. 즉, 부대마다 시내 집결 장소에 군데군데 곳에 모여 있다가 짜인 시간표에 따라 출발지점으로 와서 행진을 하고서 해산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해산을 하는 것이다.

퇴역 참전용사들이 각기 자기가 참전 했던 전투의 부대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을 하는 것을 보면 마치 현대사의 시네마를 보는 것 같다. TV는 오전 내내 행진을 생중계하고 도로 연변에서는 시민들이 환호를 벌인다.


최연소자가 60대 후반의 나이인 파월 한국군 참전부대는 그래도 그 중에 젊은 축에 속하는 편이다. 호주인들은 대강 줄만 맞추어서 발은 맞추지도 않고 완전 자유민주주의식으로 행진을 하지만 오랜 동안 군사독제 시절을 겪은 한국인들은 줄은 물론이고 어떻게든지 발까지 맞추어보려고 애들을 많이 쓴다.

원래 국가의 통제가 강한 나라일수록 군인들의 행진이 절도가 있는 법이다. 호주 영감들에 비해서 그래도 비교적 싱싱한 한국인들이 보무당당하게 행진을 하는 것을 보면 연도의 시민들이 열렬하게 박수를 보낸다.

호주에는 고맙게도 연합군 연금이라는 것이 있어서 호주가 참전한 전쟁에 연합군으로 나란히 참전했던 국가의 군인은 호주의 재향군인과 똑같이 취급해서 60세부터 연금을 지급한다. 인심 좋게 부인까지 함께.

따라서 호주가 참전했던 한국전과 월남전에 참가한 한국인들도 해당이 되는 것이다. 덕분에 젊은 시절 월남에서 피 한 방울 흘려 본 적도 없고 땀 몇 방울 흘린 것 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멋모르고 호주로 온 덕에 효자 만난 셈이다. 젊음 시절 고생해서 돈은 한국에다 벌어주고 늙어서 혜택은 호주에서 받으니 좀 미안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호주의 국군의 날이라고 할 수 있는 안작데이 행사에는 반드시 참여한다. 최소한 밥값은 하기 위해서. 그런데 연금은 꼬박 꼬박 받아 쳐 먹으면서 안작 데이 행사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는 양심은 한국에 두고 몸뚱이만 이민을 온 사람도 있다.

2006년도에 시드니에 있는 월남참전 전우회원들은 안작데이 행사에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옛 상관인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을 초청하기로 했다. 나는 이 기회를 계기로 영화 쪽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노병들의 재회'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을 기획했다.

월남전 종전 후 월남에서 일하던 기술자들과 현지에서 제대를 해서 일을 하던 한국인 150 여 명이 호주로 왔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월남전 종전 후 공산정권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이들도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아직 안되어 나라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 호주를 택한 그들은 낮선 땅에 도착해서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들 대부분은 정식으로 영주권을 받아서 이민 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여행 비자로 호주 생활을 시작했다. 대부분이 미혼이었던 그들은 그 후 고국에서 여자들을 데려와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은 키워서 오늘날 한인사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이미 월남에서 월남 여자들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여정은 특히 험난했다. 왜냐하면 당시 월남인들은 보트가 아니고서는 월남을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호주로 온 노병들이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살면서 전쟁 참여 시기와 관계없이 모두의 상관이었던 노장군을 초청해서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한국계 호주인 2세, 3세들에게 아버지로서, 할아버지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그들이 전쟁터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호주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영화는 행사 2주 전에 한국에서 먼저 채 장군과 인터뷰를 끝내고 채 장군 일행이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는 모습에서 시드니 공항에서 환영 나온 전우들에게 경례를 받는 감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다. 아들에게 시드니 공항 출구를 나올 때 밖에서 촬영팀이 기다리고 있음으로 중구난방으로 나오지 말고 채 장군을 선두로 해서 질서 있게 나오도록 주문을 해놓았다.

촬영을 위해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아들에게 채 장군 일행의 군기를 단단히 잡으라고(?)를 강력하게 주문을 해두었는데 불행히도 채 장군이 출국 직전에 갑작스럽게 복막염 수술을 하게 되어 오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월남전에 참전했던 다른 예비역 장성 몇 명이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행사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꼴불견이 연출되었다. 행사 중에 갑자기 비가 오자 호주 예비역 장성들은 묵묵히 비를 맞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거의 무의식적으로 우산을 꺼내서 예비역 장군들을 가려주었다. 나는 그 모습이 호주인들 눈에 얼마나 이상하게 비추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전역을 하면 평범한 민주시민으로 돌아오는데 한국인들은 결코 민주적인 사고방식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월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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