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지만, 면담을 요구하며 의사당 입구에서 울부짖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 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외면했다. 사진 왼쪽은 도착, 오른쪽은 떠날 때 모습.
이희훈/공동취재사진
붉은 카펫은 영화제에서 영화배우들만 밟고 가는 게 아니었다. 경찰과 경호원들이 동원돼 길을 내준 붉은 카펫을 밟고 가며 미소를 짓던 대통령은 그 옆에서 절규하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끝내 외면했다.
언제고 연락하고 찾아오면 만나겠다던 그 대통령, 유가족의 여한이 없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눈물까지 지었던 그 대통령은 70일 넘도록 청와대 앞에서 풍찬노숙을 해온 세월호 유가족을 국회에 들어가는 그 붉은 카펫 위에서도 외면하고 말았다.
'최종 책임자'임을 자임했던 대통령은 최종적인 성역 안으로 들어가 강고한 성벽을 둘러치고 있다. 그 성역 안에서 정부여당의 책임 회피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계속 지침으로 내렸다. 지난 7월 이후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고 난항을 거듭하며 시간을 끌게 된 데는 대통령의 앞뒤가 다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최종 성역이므로 이 성역을 보호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일관된 태도가 특별법 협상의 최종 걸림돌이었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었으며 경제를 살리는 '골든타임'만 강조했다. 국민의 안전을 안전산업으로 풀겠다는, 안전을 다시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넘기겠다는, 어쩌면 세월호 참사를 연장하겠다는 그런 법안을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며 이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를 주문했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눈뜬 자들의 국가로그의 눈물이 거짓 눈물이었듯이 그의 미소는 악마의 미소다. 최종 책임자의 위치에서 성역으로 빠져 나간 뒤에 갖는 여유에서 오는 미소겠지만, 그가 과연 언제까지 여유 있게 웃을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우리 사회의 모든 민낯 가운데 무책임과 무능의, 정치 부재를 확인한 것이 가장 큰 것이었지 않았을까? 안전을 지켜주지도, 제대로 구조를 해주지도, 그 뒤로 위로조차 하지 않는 정치권력의 민낯을 우리는 보았다.
울부짖는 유가족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책임자들의 낯짝을 확인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가해자임을 드러냈다. 드러난 가해자의 본색… 그들도 예전 이 나라 권위주의 권력의 대를 잇는 '가해자의 나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가해자는 웃고 거들먹거리는 때에 피해자는 울면서 풍찬노숙을 해야 하는 잔인한 정치만 있는, 그래서 정치가 실종된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우리는 세월호 이후 처절하게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아마도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눈뜬 자들의 국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눈뜬 자들의 국가에서는 더 이상 선거철만 되면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며 90도 인사를 하는 정치인들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우매한 백성이 아니라,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 되고 정치의 주체가 되는 '눈뜬 자들의 나라'로 가는 그 길의 입구를 찾아 우리는 지금껏 헤맸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나라로 가는 입구를 보여주었다. 책임자가 제대로 책임지도록 하는 일, 그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한 진실을 밝히는 일로부터 우리는 우매한 노예에서 주인으로 서게 될 것이다.
노예에서 주인으로 서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