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 '이제는 개헌이다'에 참석해 이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남소연
- 그렇다면 내각책임제도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분명한 것은 단순다수대표제보다는 비례대표제가, 대통령책임제보다는 의회책임제가 자유, 평등, 복지, 민주주의에 더 낫다는 것이다. 선진복지국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얘기해주는 것인가? 국가가 발전하는 단계, 특히 경제성장단계에서는 대통령책임제가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선진복지국가단계에서는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서는 의회책임제가 훨씬 유리하다. 한국사회가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의회책임제는 아직 어렵다고 본다. 우선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 열망이 강하기 때문에 대통령 책임제에서 바로 의회책임제로 가기 어렵다. 그래서 저는 분권형 대통령제, 반(半)대통령제, 준대통령제를 주장해왔다. 또한 현재의 한국 정당체제와 의회정치의 수준에 비추어 의회책임제를 시행하기에는 이르지 않나 싶다. 다른 한 이유는 사회경제부분, 이른바 사회경제적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있는 독점, 과점 상태에서 의회책임제는 부패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 재벌의 영향력은 지금 사회 모든 부문을 압도할 정도로 너무 막강하다.
과연 현재의 정당과 의회가 재벌, 관료, 언론, 학교, 종교 등 상층부 카르텔을 제어하고 개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벌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정체돼 있는 것은 재벌체제와 관련돼 있다. 막강한 재벌구조가 관료, 대학, 종교, 법조체제에까지 강고한 상층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당체제가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의회책임제를 실시하면 그 의회책임제는 대통령무책임제를 넘어서 다시 의회무책임제, 정당무책임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의 개헌 반대는 보수기득세력 크게 도와주는 것" - 그동안 정치권과 학계에서 계속 개헌을 논의해왔는데 왜 실행되지 못했다고 보나? "기득세력, 대통령, 의회, 진보세력, 이 네 가지가 핵심요인이다. 먼저 보수적 기득세력의 경제논리에 따른 저항이다. 대통령과 재벌, 보수 언론, 학계 등은 헌법개혁에 따른 민주주의의 확장을 원하지 않는다. 반정치적, 반의회적 정서를 공유하는 그들은 막강한 권력과 이익을 보장해주는 현재의 헌법체제가 좋은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반정치, 반의회 정서를 활용해 헌법개혁논의가 초래할 정치확장과 질서변동을 제어하려 한다. 시장의 실패를 시장이 해결할 수는 없다. 경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헌법을 개혁하려고 할 때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득세력은 이를 비판해왔다. '경제가 문제다, 개헌은 블랙홀이다, 경제가 중요하다, 그러니 개헌은 안 된다'는 말은 오히려 완전히 거꾸로 접근해야 한다. 즉 국민경제가 안 좋기 때문에 헌법구조를 포함한 정치질서를 바꾸어야 한다. 경제가 좋다면 오히려 정치질서를 전혀 바꿀 필요가 없다. 선진국들의 경우도 나라가 위기였던 시점에 국가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했다. 경제가 잘 나가면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경제가 좋다는 것은 체제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지 않고 시민들의 삶과 경제가 계속 안 좋다면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헌법개혁은 민주주의역량을 반영하는 문제다.
둘째는 대통령요인이다.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개헌을 약속하거나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헌법개혁은 항상 당시 대통령의 임기 전반에 추진해야 한다. 임기 후반에는 대통령이 식물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이미 차기주자들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헌법개혁은 미래권력 구조를 향한 경쟁이 된다. 차기주자들이 가시화되면 그들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충돌하기 때문에 헌법개혁은 불가능하다. 이 헌법을 개혁한다고 해도 현임 대통령의 임기는 제한받지 않는다. 따라서 임기 초반에 개헌한다고 해도 권력행사와 임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통령이 임기 전반에는 제왕의 지위를 다 누리고 나서 식물로 전락한 뒤 개헌을 시도해서는, 진정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또 성공할 수도 없다.
끝으로 의회 책임도 크다. 의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개헌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려면 국회의원들의 특권 축소와 함께 가야 한다. 헌법개혁의 중심 주체는 의회다. 내용 역시 핵심은 민주주의 확대와 대통령권력 축소인데 그렇게 하려면 의회권한과 역할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의회의 권한을 키우고 그들이 주도하는 개헌이 가능할까? 그건 불가능하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우리 국회의 규모는 최소 500명, 최대 900명 사이여야 한다. 제헌국회 때 국민 10만명당 의원 1명이었다. 5·16 쿠데타 때부터 대폭 줄었는데 그때 구조가 지금까지 왔다. 의원을 500명 이상으로 늘려야 정상이다. 상원과 하원도 나누고, 비례대표도 대폭 늘려야 한다. 의회 권한은 키우되 의원 개인의 특권은 대폭 축소해야 한다. 하지만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폐지하면 안 된다. 국민 대표가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기관을 비판하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노회찬 사례'가 생기지 않는다.
국회의원 특권의 핵심은 돈 문제다. 그들은 명예와 권력도 갖고 부(富)도 가지려 하기 때문에 안 된다. 이걸 내려놔야 국민들이 그들의 진정성을 믿어준다. 의원이 되면 경제 기득이익이 지나치게 많다. 의원 급료가 OECD 평균은 1인당 GNP의 2배를 조금 넘으나 한국은 무려 5.5배다. OECD 국가의 평균은 2.08배다. 노르웨이 1.1배, 스웨덴 1.7배, 핀란드 2.7배, 벨기에 2.3배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많아도 지나치게 많다. 절대액수로도 구매력 기준으로도 독일, 영국,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보다 높다. 우리나라의 5.5배보다 더 높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래서 국회의원 급료를 절반 이상 삭감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헌법개혁 의지를 인정받는다.
반면 우리나라 의회 예산은 안성시나 광명시 수준으로 작다. 게다가 주로 의원이나 보좌관 등 인건비에 집중돼 있다. 정책비용은 아주 적다. 다른 나라들은 인건비는 적은데 정책개발, 입법 등 정책비용이 크다. 의회예산을 늘려야 한다. 인건비를 대폭 축소하고 정책비용을 대폭 늘려야 한다.
진보세력 역시 문제가 많다. 혁명이 불가능할 때 진보의 확장은 기본적으로 제도를 문제삼는 것이다. 혁명이 아니라면, 권력의 구성방법과 절차를 바꾸지 않고 진보가 성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제도, 특히 헌법에 느끼는 문제의식이 대단히 허약하다. 그들의 토대와 역량에 비해 의회 대표성과 권력진출—연립정부를 포함해-이 현저히 허약한 것은 제도요인이 아주 크다. 기존 제도로 인해 크게 손해를 보고 있는 진보가 헌법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기존제도로 인해 커다란 이익을 보고 있는 보수기득세력을 크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 내 지식의 범주에서 이러한 진보는, 불가능한 급진혁명을 꿈꾸는 경우가 아니고는 거의 알지 못한다."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 반대하는 논리가 되어선 안 돼"-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을 평가한다면."지금 개헌 논의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왜 개헌하는가' 하는 문제다. 현행 헌정체제로는 능력있는 좋은 민주주의, 좋은 나라, 좋은 삶을 만들기 어렵다. 거기에 방점이 놓여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 하나를 얘기하면서 4년 중임이나 분권형으로 바꾸면 된다고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 한국 민주주의나 한국사회의 모습, 한국적 삶이 좋지 않는 이유를 정밀하게 진단한 뒤, 헌법질서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를 파악해서 개혁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 일부 그룹에서는 '7공화국 운동'을 주창하기도 한다."민주주의와 헌정체제에 관한 한 '몇 공화국'이라고 하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른 표현도 아니다. 노태우 정부로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를 제6공화국이라는 같은 범주로 묶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민주주의 내용의 편차와 다양한 여러 현실을 호도할 뿐이다."
-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이 개헌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 강화, 결선투표제 도입, 선거구제 개편' 이후에 개헌하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부분적으로 맞는다. 그러나 그것을 선후의 문제나 양자택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거, 정당, 국회, 지방자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부분들을 그동안 수차 개혁해 왔지만 원했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권력독점이라는 근본적인 헌법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구제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헌법개혁을 반대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이 가야 한다. 선거구제를 개편하더라도 권력독점을 그대로 두면 원하는 목적을 거의 달성할 수 없다."
- 먼저 선거구제를 개편한 뒤에 개헌하는 단계론도 가능해 보인다. "동시에 한다면 더욱 좋고, 개헌을 전제로 선거구제를 개편하는 것도 좋다. 선거구제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선거개혁과 헌법개혁은 선후나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선거개혁만으로 좋은 민주주의, 능력있는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행 체제에서는 부분개혁으로는 좋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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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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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개헌반대'는 보수세력 크게 도와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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