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민실위 간사
이영광
- 최근 MBC의 '교양제작국 폐지'가 확정돼 논란입니다. 그동안 사측은 이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경영진은 교양제작국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비겁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폐지를 자기들끼리 결정하고는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노사협의를 거부했습니다. 국정감사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이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었을 때도 애매하게 답변을 했죠. 감독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질의에도 비슷한 형태로 대응했어요. 공영방송에서 교양국 폐지라는 결정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알면서도 밀어붙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 어떤 논의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채 회피한 것이죠. 결과는 소문대로 교양제작국 해체와 주요 교양프로그램 폐지라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 2012년에 시사교양국이 폐지됐는데 이번 교양제작국 폐지와 무슨 차이가 있나요?"시사교양국 시절 약 60여 명의 PD들이 <PD수첩>, <불만제로>, 다큐멘터리, 아침과 저녁 시사 정보 프로그램 그리고 새로운 포맷의 특집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습니다. 인적교류가 활발했고, 또 자신이 맞는 교양장르에서 일할 수 있는 풍토가 있었죠. 서로 아이템을 나누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불만제로>에서 아이템을 검토하다가 '아, 이건 <불만제로>보다 <PD수첩>에서 크게 다루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하면 서로 아이템을 공유했습니다. 제작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함께 했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찰의 수사라든지, 황우석 사태라든지 이런 비상상황이 오면 '시사교양PD'라는 정체성으로 함께 싸웠죠. 2012년 김재철 사장은 <PD수첩>을 이런 정체성을 지닌 교양국에서 떼어내기 위해서 시사교양국을 해체하고 <PD수첩>을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시사제작국을 만들어 <시사매거진 2580>과 함께 묶어 버렸습니다. 안광한 사장은 이런 체제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시사라는 장르를 잃어 버려 축소된 교양제작국도 결국 2014년을 넘기기 전에 완전히 없애 버렸으니까요."
- 교양제작국 폐지가 문제인 이유는 뭔가요?"교양이라는 장르는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장르죠. 교양PD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또 품격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에 그 터전을, 프로그램을 만들고 좋은 교양PD를 키우는 그 터전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이죠.
2010년 이후 신입교양PD를 뽑지도 않고, 파업에 참가했던 PD를 징계하고, 능력 있는 PD를 비제작부서로 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교양제작국이라는 터전을 없애 버렸습니다. 이는 교양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공영방송의 기능을 MBC에서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의미가 있습니다."
- 민영방송인 SBS도 교양국이 있는데 공영방송인 MBC에 교양국이 없다는 게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지상파 방송사에서 교양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크죠. 시민적 요구도 있고, 지상파가 너무 상업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공익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죠. 공중파 TV는 보편적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품격 있는 다큐멘터리, 좋은 정보의 프로그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는 탐사보도의 기능 같은 것이 필요하죠.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할 권리를 방송사에 주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또 이런 프로그램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방송사업자로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익성을 추구하지만, 오락 부문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시민적 규제를 합니다.
지금 MBC는 교양이라는 장르의 재생산을 완전히 막아 놓았습니다. 사회적 의무를 방기하고 있습니다. 교양 장르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청률, QI지수(프로그램 품질평가), 대외 수상실적 등을 보면 <왔다 장보리>, <무한도전>, <진짜사나이>, <불만제로>순입니다. <불만제로>가 전체 4위잖아요. 매우 우수한 성과를 보인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이번 개편으로 경영진은 <불만제로>를 강제로 폐지했습니다. 시청자도 좋아하고 공익적 효과도 있는 교양프로그램을 강제 폐지하는 것이 현 경영진의 판단입니다. 이율배반적이죠. 교양국이 경쟁력이 없으니 해체한다고 하는데 교양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평가가 좋은 <불만제로>를 폐지하는 앞뒤가 맞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MBC에는 JTBC 같은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경쟁력 얘기를 하는데 방송의 경쟁력은 뉴스나 시사가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JTBC의 예능과 드라마가 호평을 받잖아요. 이것은 뉴스가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예능과 드라마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데 MBC는 최근 뉴스의 공정성이 떨어지며 예능과 드라마까지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단 말이죠."사실 지금 손석희 사장이 진행하는 뉴스가 없는 JTBC를 생각해 보면 그냥 쇼·오락을 잘하는 방송사입니다. 지금은 뉴스가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JTBC는 가장 사랑받는 종편채널이 되었습니다. 뉴스가 공정하고 '할 말은 한다'라는 방송사 이미지가 생겼어요. 당연히 다른 예능이나 드라마 장르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죠. 지금 MBC는 이런 선순환 고리가 빠졌다고 봅니다. 각종 객관적 조사에서도 보면 뉴스에 대한 평가·신뢰도 등이 많이 하락했으니까요."
- 2010년부터 시사교양 신입PD를 안 뽑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때부터 계획된 것이라고 보세요?"MBC 전체적으로 공채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있거든요. 그 사이 엄청난 수의 경력기자를 뽑았죠. 장기적인 경쟁력을 위해서 그런 것이냐. 노동조합이 보기에는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파업 당시 대체인력을 뽑는 연장선상에서 신입사원 공채를 하지 않고, 경력기자를 비밀리에 뽑습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게 현 MBC의 상황이죠."
- 지난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MBC 노조가 피켓 시위를 했습니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일단 이 사실을 사내외에 알리기 위해서, 또한 교양제작국 해체나 대규모 인력의 부당한 이동 등을 알리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구성원들은 함께 분노하고 있고, 함께 슬퍼하고 있어요. 그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단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사측은 무반응인가요?"이렇게 중차대한 일들이 벌어지며 노동조합·방문진·국회에서도 질의가 이어지는데도 사측은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교양제작국 해체, 프로그램 폐지, 대규모 인력재배치 등의 조치가 떳떳하다면 왜 대놓고 논의를 하지 못하는 겁니까? 정보는 바깥으로 다 샜는데도 쉬쉬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