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
천주교인권위원회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 당사자로 참여하며 소감을 몇 마디 남기려고 합니다. 지난 9월 18일에 종로경찰서가 발송한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사실 통지"라는 제목의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2014년 5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대화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 및 사진 파일"에 대해 압수·수색·검증 집행을 했다고 합니다.
소식을 들은 인권단체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규탄 기자회견을 함께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우려했던 사이버 사찰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기에 많은 언론사에서 관심을 보이며 전화로 질문하는 기자들도 있는데, 예전처럼 편하게 카톡으로 묻는 기자들이 없는 걸로 보아 무언가 변화의 기운도 느낍니다.
카카오톡 메시지 등 통신내역을 압수·수색·검증했다는 경찰언젠가부터 제 신변에 여러 곡절이 거듭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정하고 낯선 처지가 익숙하지는 않습니다.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출소하자마자, 검찰은 "원칙대로 석방시키면 어떻게 하냐"며 재판부에 항의하는 기사를 언론에 흘리더니, 결국 보석취소 청구를 강행하였습니다. 6월 16일에 영장을 발부받아 바로 디지털 파일을 입수한 경찰이 80여 일의 준비를 거쳐 뒤늦게 수사자료를 완성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외치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게 되던 날, 검찰은 구속이유와 범죄의 증거라며 꽤나 비장한 표정으로 자료를 보여주었는데, 대부분은 게시판과 SNS에 돌아다니는 글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아주 짧게 물었습니다.
"정진우씨, 당신이 쓴 것이 맞습니까?"급박하게 구속하려다보니 트위터와 블로그는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다른 분들 것을 빌려오기도 했지만,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가져온 것은 제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이 글도 10월16일에 속개되는 공판에서는 보석취소를 정당화하는 증거가 되어 저자 확인절차를 밟을지 모르니 자진해서 미리 적어둡니다. 저는 정진우가 맞고, 이것은 제가 쓴 글입니다.
처음부터 일부러 그러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게시판과 SNS에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범죄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고, 다른 이들과 소통할 자유 정도는 누리고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막상 제가 한 말과 글이 저를 가두는 재판의 주요 증거자료로 등장하는 걸 경험하며 이런 환상은 처참하게 깨졌습니다. 저의 무언가가 또 파헤쳐지고 조사당하고 있다는 의심을, 너무나 싫은 이 느낌을 온 몸이 기억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과 소통할 자유 정도는 누리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게시판과 페이스북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이고, 남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말할 필요도 있는 것이지만,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는 지정된 사람끼리 소통하는 수단이고 공간입니다. 저들은 압수와 검증이라고 이름 붙이지만, 저들이 실제로 행한 것은 남의 말과 글을 몰래 녹취하고 도청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직 재판중이지만 피고인 저의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지인들끼리 나누는 내밀한 이야기들, 심지어 만난 적도 없고 서로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의 지극히 사적이면서 때론 정치적으로도 악용할 수 있는 정보를 팩스 한 장 보내 무차별로 가로챌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상상이고 잔혹한 폭력행위입니다.
이번 압수수색에서 가장 불편하고 화가 치미는 목록은 삼십 여년 만에 만나 밀린 우정을 나누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들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은 어떤 청소년들의 부모인데, 세월호참사의 교훈과 진상규명에 대해 토론도 하며, 청와대와 참사 책임자들을 과격하게(?) 규탄하는 말도 주고받은 것 같습니다.
난데없이 압수수색 공동대상자가 되어버린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리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기가 막힌 소식이라며 분노하고 있고, 무서운 세상이라며 믿기지 않는다는 댓글도 보입니다. 친구 하나 잘 못 둔 탓으로 여기지 않고 어떻게 함께 대응해야하는지 묻고 있는 벗들이 가슴 벅차게 자랑스럽습니다.
이번 압수수색 내역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보도 있고, 사측이나 노조파괴 컨설팅업체에게 알려지면 불리해질 수 있는 투쟁사업장들의 대응방안, 저의 재판과는 직접 관련 없지만 공권력이 지속적으로 주시하는 우리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당사자들 대화 내용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시공간 제약 없이 일상적인 회의와 소통수단으로 카카오톡을 이용하던 추세 때문이겠지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저항하는 상대방 진영 내부를 속속들이 감시하며 효과적으로 탄압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저들에게 넘어가봤자 별반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의 것들에 대해서조차 우리가 그렇게 당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면, 그 작은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실체이고 도둑질 당하지 않고 지켜야 할 소중한 역사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최고 권력자의 오만한 발상으로 촉발된 사이버 망명운동이 나날이 더 커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씁쓸하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진실을 가두려는 자들에게 제대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포위당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저들입니다. 저들이 만든 구속영장 청구자료에는 친절하게도 제가 쓴 글에 중요한 말이라며 밑줄까지 그어져있는데,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직접행동'이라는 용어입니다.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고, 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일러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압수와 사찰의 피해 현황을 분석하고, 오늘 이렇게 기자들과 국민들에게 직접 말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말하는 직접행동일 것입니다. 저들은 빼앗고 가두는 것으로 우리를 협박하지만, 우리는 복종을 달게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함께 손잡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낼 것입니다.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직접행동기자회견을 마치게 되면, 또 다시 무엇을 말하고 쓸 수 있을지 담담히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사랑하는 벗들의 안부를 묻고, 동네 골목의 어느 술집에서 번개를 치고, 애써 참아왔던 분노를 드러내며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에서든, 누구와 같이 있는 곳이든지.
우리를 위축시키고 우리의 말과 글을 가두려는 자들이야말로 진실을 가리는 자들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이 시간, 나의 벗들이 스스로 망명이라고 부르는 이 직접행동이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스스로를 지키며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임을 확신합니다.
불쾌하고, 답답하고, 기가 막힌 현실에 참담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밉니다. 우리 자신의 분노를 믿고 우리의 정당함을 직접 증명해냅시다. 우리의 말과 글을 포기하지 않고, 저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실천하며 또 다른 우리를 연결합시다. 더 많고, 더 크고 강한 우리를 만들어냅시다.
기자회견을 준비해주신 분들, 어딘가에서 지켜보며 힘을 보태주시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글이 다시 감옥에 가게 되는 증거자료가 되더라도 당당히 저의 말을 남기며 마치겠습니다. 저들은 틀렸습니다. 우리의 정당함을 증명하며 꿋꿋하게 함께 걸어갑시다. 지금 여기에서, 직접행동!
※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는 6월 10일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경찰의 해산명령을 어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뒤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입니다. 재판부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해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10월 16일에 정진우 씨에 대한 보석 취소를 청구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검찰은 정진우 씨가 사이버 검열에 대해 근거없는 비난을 해서 국가적 혼란을 초래했다며 보석을 신속히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지난 8월과 9월에도 보석 허가 취소요청을 문서와 구두로 요청한 데 이어 세 번째입니다. 검찰은 적절한 조치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에 대한 논란의 책임을 정진우 씨에게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정진우 씨는 "검찰과 정권의 보복성 조치에 굴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활동해나갈 것"이라며, 10월 23일에 열린 '사이버사찰긴급행동' 출범 및 계획발표 기자회견에 함께 했습니다. - 편집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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