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반인들이 의료사고를 당해 형사고소를 하면 경찰은 몇 차례 관계자 소환 질문과 단순한 의사협회 자문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사진은 고 김유비군의 아버지 김기후씨의 모습.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지난 2013년 8월 열감기로 전북 익산의 한 병원에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김유비(당시 8세)군의 아버지 김기후씨는 형사고소 후 조사 과정에서 더 절망했다고 한다. 의무기록을 확보하고 부검을 하는 등 6개월 반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지만, 경찰은 관계자를 소환해 질문만 한두 번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의사협회 자문을 얻는 수준에서 조사가 마무리 됐다. 결론 역시 '내사 종결'. 문제는 김씨의 사례가 특별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해철씨 경우, 송파경찰서에 유족측의 고소장이 접수되자마자, 경찰이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압수수색을 했다. 의무기록과 증거물 확보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국과수의 부검 기간도 짧았다.
2차로 옮겨진 아산병원의 자료도 확보되어 종합적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병원 측이 발뺌한 사진도 확보했다. 이 사진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S병원이 존재 여부를 부정했던 자료다. 뿐만 아니라 수술 동영상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관련 데이터를 관리하는 업체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동영상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손영준군의 아버지도 마취과와 정형외과 의무기록에 적힌 수술 시간이 달라 이를 확인하고자 했다. 우선 어떤 기록이 맞는지 알려면 아들의 심전도 기록과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심전도 기록이 없다"면서 주지 않았다. 손군 아버지는 CCTV 영상도 받아낼 수 없었다. 경찰과 검찰도 압수수색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고소사건에서 병원 측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의사진술이 담긴 형사기록지에 담긴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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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수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의료사고 수사전담반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는 "형사고소를 하게 되면 경찰이 육하원칙에 따라 의사진술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며 "아무리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이것만이라도 성실하게 지켜주기만 한다면 진료기록과 환자 진술로만 진행되는 민사소송에서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하며 경찰 수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화를 소개했다.
구 변호사가 말한 사례는, 잦은 기침 때문에 병원을 찾았던 20대 여성이 조직 검사를 하러 들어갔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병원 수술 기록에는 조직검사 도중 폐동맥고혈압이 높아 출혈쇼크가 와서 어쩔 수 없이 개흉을 했다고 적혀있었다. 당연히 감정결과도 좋지 않아 민사소송 승소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의사진술이 담긴 형사기록지에 반전이 담겨있었다. 형사기록지엔 '몇 시에 어떤 수술을 왜 했는지'가 상세히 담겨 있었는데, 그 결과 조직검사를 하지 않은 채 바로 수술에 들어갔음이 밝혀졌다. 결국 형사기록지가 증거로 채택되면서 소송 방향은 '환자가 동의하지 않은 수술'로 잡혔고, 환자측은 재판에서 유리한 지점에 설 수 있게 됐다.
구 변호사는 "환자의 말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못하지만 수사기록은 인정된다"며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들이 의료인의 과실여부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사고 가해자의 진술조서를 받을 수 있는 경찰 조사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나 유족이 병원에서 쉽게 진료기록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진실규명의 중요한 증거인 CCTV 등은 임의로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법원에 증거보존 신청을 해야 한다"라며 "문제는 법원을 통해 증거보전 절차를 거쳐 증거를 확보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병원이 그 사이 (자신들에게)불리한 증거자료를 없애버릴 확률이 높다"라고 우려했다.
안 대표는 이어 "만약 경찰이 신해철씨 사건처럼 신속히 압수수색을 진행하면 그만큼 신속하게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 진실 규명이나 공정한 의료소송 판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라며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중장애를 입었고 의료사고 개연성이 있는 형사고소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신속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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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되고 영준이는 안 돼? 두 얼굴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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