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김수영'일 수밖에 없는 사내다

[리뷰]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고,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보고

등록 2014.11.11 17:03수정 2014.11.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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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기 위한 글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고 문익환 목사의 말이었던가, '바위 뒤에 핀 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시인'이라는 말. 그러니 제대로 된 글(시)이라는 것은 언어의 표현보다는 눈과 귀가 제대로 열려 있는 사람이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발견하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살아생전의 시와 산문을 집대성해 두 권으로 발간된 김수영 전집을 구매한 지 꽤 됐으나 읽기가 힘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근현대사를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즉, 일제강점기, 광복과 이승만 정권,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등이 내게는 여전히 피상적이어서 피부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의 삶을 이해하는 것을 우선해야 했다. 강신주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는 그렇게 만나게 됐다. 강신주는 김수영을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이라고 기리고 있다. 인문학은 문학과 철학, 역사를 아우르는 말이니 김수영이 20세기가 낳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역사가라는 것이다.

김수영의 시

 <김수영을 위하여> 표지
<김수영을 위하여> 표지천년의상상
전집에 소개된 시를 읽으며 느낀 것은 김수영의 시는 선언적이라는 사실이다. 속삭이며 귀를 간질이는 내용도, 운율이나 리듬을 살리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형식도 없다. 뱉어내고 싶은 것들을 언어라는 형식을 빌어 표현하기 때문에 언어의 조탁이나 리듬 같은 것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나와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한 시인이 김수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1957)

저자 강신주는 인문 정신에 충실한 시인이자 인간으로서 김수영을 조명한다. 김수영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마저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나 <죄와 벌> 같은 시는 여느 시인에게서도 볼 수 없는 글이라는 것.


거악(巨惡)에는 침묵하다가도 만만한 대상에게는 큰소리치는 소시민의 전형을 보이는 글인데, 김수영은 이러한 시작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통렬한 반성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렇게 김수영은 억압과 굴레를 강제하는 어떠한 대상과도 타협하지 않는 단독성을 지닌 자아로 거듭난다.

김수영의 삶


김수영은 1921년생이고 종로에서 태어났다. 1950년 그의 나이 서른에 김현경과 결혼하고, 같은 해 한국 전쟁이 일어난다. 북한군에게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북한군 대오가 혼란한 틈을 타 이탈해 도망치던 김수영은 다시 북한군에 잡혀 총살 직전까지 가게 된다.

서울로 돌아온 김수영은 다시 국군으로부터 반공 포로로 낙인 찍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힌다. 1952년 석방된 김수영은 아내 김현경이 자신의 고교 동창과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북한 의용군과 반공 포로로서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을 견딘 김수영에게 운명은 너무도 가혹했던 것이다. 김수영은 그로부터 2년 뒤 김현경과 재결합한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 <달나라의 장난> (1953)

남도 북도, 좌도 우도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집단이라면 김수영에겐 저항의 대상일 뿐이다. 제한된 자유, 즉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에서도 김수영은 직감한다. 정치와 종교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굴종이 개입되어 있음을.

'자기 이해란 기본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투철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이 시를 통해 이해한 자기 자신이나 인간의 진면목은 항상 장밋빛을 띠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사정은 반대인데, 대부분 제대로 포착된 자기의 모습은 상처투성이거나 때로는 벌레가 우글거릴 정도로 썩어 있는 경우가 많다.' (p.185)

젊은 시절 굴곡 많은 삶을 견뎌낸 시인 김수영은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졌을 수도 있다. 실제는 남루할 뿐인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수영은 그럴수록 시를 썼고 자신을 닦아 세웠던 것이 틀림없었을 것이라 책의 저자는 말한다.

강신주는 김수영의 삶과 시에서 '단독성'을 발견한다. 김수영은 정치와 종교, 자본주의가 만든 체제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단독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북한과 남한에서 자행된 독재에 평생 치열하게 저항했던 것도 바로 그가 단독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포스터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포스터드림플레이테제21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나오는 시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연극의 제목이다. 물론, 김수영의 삶과 시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연극의 부제는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서'다. 김수영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인문주의, 즉 타자에 의해 좌우되는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여정에는 연출자와 배우들의 또 다른 치열한 고민이 엿보인다. 우리 모두가 김수영처럼 산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주는 내게 '김수영 주간'이었다. 김수영을 알기 위해 정확히는 김수영의 위대함을 알기 위해 강신주의 책을 가이드 삼아 그의 시와 산문을 읽고, 배우 강신일이 주연한 연극을 보았다. 강신주와 강신일 또한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았는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것이 공동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일체의 전체주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단독자로서의 자유를 고집한 시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과정도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한 시인 김수영은 1968년 귀갓길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강신주의 책에는 김춘수, 서정주, 이어령 등의 문인이 등장한다. 죽기 전 김수영이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글과 함께 말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시여, 침을 뱉어라> (1968. 4)
덧붙이는 글 -책 (<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지음/ 김서연 만듦/ 2012년 4월 초판 발행/ 천년의 상상)
-연극,(<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작,연출 김재엽/ 출연 강신일 오대석 등/ 제작 드림플레이 테제21/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2014년 11월 4일~11월 30일)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천년의상상, 2012


#김수영 #강신주 #강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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