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앞으로는 막고 뒤로는 열린 채소류

[주장] UR농업 협상 원죄... 한중 FTA도 영향

등록 2014.11.12 17:08수정 2014.11.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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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실질 타결 소식이 타전되면서 농업계는 의외로 담담한 분위기다.

농민단체들이 한중 FTA 반대, 피해보전대책 요구 등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지만, 낮은 수준의 개방화 추진으로 이번 협정으로 국내 농업계가 입을 피해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도 대부분의 품목이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된 만큼 국내 농업의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농업계 영향 최소화

정부가 공개한 협상 내용을 살펴보니, 쌀과 주요 축산물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고추, 양파, 마늘과 같은 양념채소와 무와 배추와 같은 김치의 주재료, 과실류는 모두 양허 제외되었다. 이에 정부는 국내 농업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전까지 타결 또는 발효된 주요 FTA와 비교하더라도 중국과의 FTA는 농산물 분야 개방은 WTO체제를 그대로 따르는 수준이다. 사실상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추가 시장개방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중 FTA 협상이 시작될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산업의 중국 의존도를 고려할 때 중국의 높은 가격 경쟁력과 지리적 위치 등을 감안하여 대부분의 품목에서 이전 FTA 수준으로 개방이 이뤄질 것으로 봐서 우리 농업 자체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 협상은 축산을 포함해 대부분의 품목에서 양허를 제외하거나 관세율의 미세 인하 또는 적정 TRQ를 제공해 사실상 당장 발효가 되더라도 영향이 없는 수준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단순 가공농산물이 관전 포인트


다만, 이번 협상에서 눈여겨 볼 것은 가공식품분야다.

정부는 주요 농산물의 우회 수입을 막기 위해 김치와 다진 양념류(다대기)의 관세율 부분을 최소화 했다. 하지만 사실상 20% 미만의 저율관세로 언제든지 관련 농산물이 가공식품 형태로 수입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우리 채소산업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중 FTA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공식품에 부과되는 관세율 자체가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김치나 다진 양념 등의 단순 가공농산물의 관세는 현행 20~45%로 10~20%를 인하할 때, 2~5%p 하향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가공농산물의 관세 인하폭이 큰 것은 아니지만 신선 배추, 무, 고추, 마늘, 양파 등의 채소가 고율관세로 묶여 있기 때문에 단순가공농산물 형태로 수입을 증가시켜 국내 시장에 영향을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일반 가정에서 수입된 다진 양념이나 김치를 소비하는 경우는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그러나 대다수 수입 양념이나 김치가 외식업소, 식품공장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국내 채소 산업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배추와 무, 고추, 양파 등 주요 채소류 가격이 2년 넘게 폭락했음에도 상당수의 외식업체들은 수입김치나 다진 양념의 사용량을 줄이지 않고 계속 늘고 있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현재 신선농산물은 고율관세, 가공농산물은 저율관세로 되어 있는 관세율 체제가 계속 우리 농업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월등하고, 이를 가공하는 노동자의 인건비는 물론, 공장부지와 같은 토지용역비 등 모든 생산요소가 국내보다 저렴한 중국에서 농산물을 가공해 들여오는 것이 신선농산물을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하는 것보다 경쟁 우위에 있다.

설사, 신선농산물의 관세율이 대폭 낮아진다 할지라도 신선농산물을 수입하는 것보다는 중국에서 가공해 들여오는 것이 가격적인 면에서 경쟁력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식품회사가 중국 현지에서 이들 농산물을 가공해 들여 올 가능성 또한 높아 주요 채소류를 고율관세로 묶어 놓는 정책은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

UR협상이 원죄

결국, 이 같은 잘못된 관세 정책은 UR(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UR 졸속 협상이 이후 농산물 개방 협상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2~2003년 우리 낙농업계는 혼합분유가 대규모로 우회 수입되면서 엄청난 양의 잉여 원유가 발생했다. 또, 낙농가의 대규모 폐업이라는 구조조정을 촉발시켰고, 당시 1만3천여 농가는 현재 6000농가 이하로 줄어들었다.

주요 교역품목인 탈지와 전지분유를 고율관세로 막아 혼합분유를 저율관세로 지정해 버리는 바람에 분유의 우회수입을 조장했다. 이는 낙농유가공업계가 대규모 잉여원유 처리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사용하는 사태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중FTA에서도 겉으로는 대다수의 농산물 수입을 막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20여 년 전 이뤄진 단순가공식품의 저율관세는 두고두고 농업계에 피해를 줄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우리의 식문화가 가정에서 식당으로, 또 부엌에서 공장으로 이동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20여 년 전의 잘못된 협상은 우리 농업을 좀 더 빠르게 무너뜨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옥답(http://www.okdab.com/okdab/main.do)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한중 FTA #UR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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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장에서 식탁까지를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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