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장 사칭 사기범 소리도 들었죠"

자전거 타고 마을 순찰하며 주민들 만난 박우현 무안경찰서장

등록 2014.11.17 15:11수정 2014.11.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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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무안경찰서장. 책상머리를 떠나 자전거를 타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만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이돈삼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현장에 있거든요. 답도 거기에 있고요. 이건 철칙입니다. 공무원들이 주민을 만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우현(44) 전남 무안경찰서장의 말이다. 박 서장은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자전거를 타고 무안군 관내 416개 마을을 전부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만났다. 이른바 '자전거 순찰'이다.

박 서장이 자전거 순찰을 시작한 건 지난 봄. 1월 부임 이후 주민 눈높이에 맞춘 치안행정을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지역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처음엔 주말과 휴일을 이용했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평일에도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농번기 때는 들녘으로, 농한기엔 마을회관으로 주민들을 찾아갔다. 그는 주민들에게 미리 챙겨 간 요구르트나 음료를 건네며 얘기를 나눴다. 마을의 최고 연장자에 교통안전용 지팡이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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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무안경찰서장이 '자전거 순찰' 중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 무안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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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순찰'을 위한 사전 자료. 박우현 서장은 자전거 순찰을 떠나기 전에 그 마을의 현황을 미리 파악한다. ⓒ 이돈삼


"처음엔 긴장하시더라고요. 경찰서장이라고 인사하니까, '누구 잡으러 왔냐?'고 묻는 분도 계셨고요. 심지어 '내 아들이 무슨 사고 쳤냐?'며 깜짝 놀라는 분도 계셨어요. 입소문이 났는지, 나중에는 '병아리 서장 왔네', '자전거 서장 왔네' 하시면서 반겨주셨습니다. 마을에 서장이 온 건 처음이라며 고맙다고 손을 잡아주는 분도 계셨고요."

박 서장의 회고담이다. 그는 주민들과 만나 치안행정의 실태를 들었다. 주민들의 건의사항도 받아 적었다.


박 서장의 자전거 순찰은 치안행정의 작은 변화로 이어졌다. 농기계 추락 위험이 있다는 곳에는 반사지를 붙여줬다. 경운기에 야광 스프레이를 뿌려 교통사고도 예방했다. 주민들이 바라는 지점에 과속 방지턱과 과속위험 안내판도 설치했다.

경찰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민원에 대해선 관계기관과 협의해 처리하고 그 결과를 주민들에 알려줬다. 양파 값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돕기 위해 홍보영상도 직접 만들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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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밭을 찾은 박우현 무안경찰서장. 박 서장은 농번기 때는 들녘으로 주민들을 찾아 다녔다. ⓒ 무안경찰서


"양파 수확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밭에서 만나는 분들의 시름이 깊더라고요. 무슨 말을 꺼내기가 어려울 정도로요. 그래서 양파 홍보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소비촉진 운동도 벌였고요."

박 서장의 말이다. 그의 자전거 순찰은 경찰의 꼼꼼한 업무처리로 연결됐다. 서장이 현장을 보고 와서 얘기를 하는데, 직원들이 얼렁뚱땅 넘어갈 수도 없었다. 직원들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몇 번 하시다가 말 줄 알았죠. 서장님이 바쁘시잖아요. 일도 많고, 가봐야 할 곳도 많고요. 이렇게 모든 마을을 다 돌아보실 줄 몰랐죠. 농민들이 고맙다며 준 양파는 경찰서 현관에 놔두고 필요한 직원들이 가져가도록 했고. 주민이 준 고구마는 구내식당에서 쪄서 직원들과 나눠 먹고요."

최기섭 정보계장의 말이다. 직원들의 일처리가 능동적으로 변하고 꼼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찰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와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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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무안경찰서장의 자전거 순찰 자료. 박 서장은 마을을 찾아가기 전에 사전자료를 챙겨 보고(오른편), 다녀온 뒤엔 결과를 정리해 놓았다(왼편).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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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무안경찰서장의 '자전거 순찰' 정리자료. 날짜별로 찾아간 마을과 현황, 주민과의 대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박 서장이 금명간 단행본으로 묶을 것이다. ⓒ 이돈삼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경찰이 있어야 합니다. 서장도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해야 하고요. 그래야 주민들에게 실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거든요. 해결할 방법도 거기에 있고요."

박 서장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만난 주민들의 건의사항을 수첩에 적는 이유다. 자전거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선 직원들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 인터넷 밴드(황토골 지킴이)에 글을 올린다. 금명간 이 기록을 단행본으로 묶어 하나씩 점검해 나갈 계획도 갖고 있다. 후임 서장이나 다른 직원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재밌는 일도 있었습니다. 서장을 사칭하는 사기범이 나타났다고 경찰서로 확인전화를 한 분도 계셨고요. 지방선거 때였는데요. 그때는 경찰서장이라고 인사하면, 몇 번이냐고 묻는 어르신도 계시더라고요."

박 서장이 털어놓는 에피소드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건 덤이었다. 자연 풍광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감성이 풍부해진 것도 자전거 순찰 덕분에 누린 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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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무안경찰서장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주민과 만나고 있다. 박 서장은 농한기 때는 마을회관으로, 농번기 때는 들녘으로 주민들을 찾아가 만났다. ⓒ 무안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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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무안경찰서장은 지역의 미래를 위해선 교통문화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 서장이 신문 스크랩을 보여주며 교통문화와 안전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이돈삼


"경찰이라면 현장을 알아야 합니다.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요. 제 생각이 그렇다고 직원들한테 강요할 수만은 없어요. 서장이 모범을 보여야죠. 그러면 파출소장과 직원들도 따라서 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주민들이 더 편안해질 것이고요."

박 서장의 말이 오랜 울림으로 남는다.

박 서장은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경찰대학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서울경찰청에서 경위로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경찰종합학교 교수, 뉴질랜드대사관 영사, 서울경찰청 치안지도관, 전남경찰청 홍보담당관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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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무안경찰서장.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진행한 '자전거 순찰'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자전거순찰 #박우현 #무안경찰서 #무안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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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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