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도둑놈, 기타 갖다 놔라

등록 2014.11.24 17:37수정 2014.11.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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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가 왜 여기에? 오전에 회사를 나가 보니 기타가 여기 문앞에 있다.
기타가 왜 여기에?오전에 회사를 나가 보니 기타가 여기 문앞에 있다.안건모

토요일에는 기타 모임과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작은책>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기타 한 대가 문 바로 앞에 있는 분리수거 통 위에 올려 있다. 누가 치고 갔나? 어라? 창문 높이 비슷한 책장 위가 내려 앉아 있다. 이건 또 왜 이러지? 이상하다. 작은책 일꾼이 나오면 물어봐야겠다. 나 없는 새 누가 왔다 갔나? 기타를 제자리에 갔다 놨다 등등 이런 생각을 한 끝에 별 생각 없이 컴퓨터를 켜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 2시가 돼 작은책 일꾼 한 명이 나왔다.

"이게 왜 무너져 있지?"

 기타를 치워 보니 책장 위가 내려앉아 있다.
기타를 치워 보니 책장 위가 내려앉아 있다.안건모

일꾼이 들어오면서 나한테 물었다. 그 소리를 듣고 아 참, 기타가 왜 거기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다, 하는 순간, 아차 도둑이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내 방으로 얼른 가 봤다. 기타가 없어졌다. 마틴 미니기타가 없어졌다. 또 뭐지? 내 기타는 있나? 있다. 그런데 내 기타 케이스 하나가 없어졌다. 일꾼 얼굴이 하얘진다. 그 기타는 작은책 일꾼 기타다. 미니 기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인 에드 시런 모델로 나온 한정판 기타다. 가격은 82만 원 정도로 아주 비싼 기타는 아니지만, 아주 귀엽고 앙증맞아 일꾼이 아끼는 기타다. 일꾼 얼굴이 울상이다.

도둑 맞은 기타 마틴 기타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모델로 한정판이다.
도둑 맞은 기타마틴 기타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모델로 한정판이다.안건모
또 없어진 게 있나? 이것저것 살펴봤지만 없는 것 같다. 사무실 가운데 놓여 있는 의자 위에 카메라도 그대로 있다. 독자사업부 금고를 열어 보니 만 원짜리 한 장하고 천원짜리 두 장이 있다. 이것도 건드리진 않은 거 같은데?


도둑이 들어 온 창문을 다시 살펴봤다. 내려앉은 책장 위에 도둑이 밟은 운동화 바닥 무늬가 흐릿하게 보인다. 그런데 왜 기타 한 대는 못 가져가고 여기에 걸쳐 놨을까? 도둑 것하고 우리 마틴 기타에다가 또 이것도 가져가면 세 대라 무거워서 못 가져갔을까?

주방에 딸려 있는 창고로 가봤다. 웬 헌 기타 케이스가 하나 있다. 헐. 이건 누구 거지? 그 도둑이 두고 간 것이다. 내 기타 케이스에 자기 기타를 넣어 갖고 간 건가, 뭐지? 근데 이걸 왜 여기 창고에다 버려 놓고 갔을까? 이건 아는 놈이 한 짓이다.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둘레엔 그렇게 도둑질 할 사람이 없다.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두 명이 왔다. 사진을 찍고 둘러보고 진술서를 쓰라고 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적었다. 또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리 봐도 없다. 컴퓨터 내장 하드는 있는지 경찰이 물어 컴퓨터를 켰다. 아무 이상이 없다. 경찰은 사무적인 태도로 사진 몇 장 찍고 진술서 받고 한마디 했다.

"신고 접수 됐으니까요 담당 형사한테 한 번 전화가 오든 할 겁니다."

참, 성의가 없다. 운동화 발바닥 무늬, 창문에 붙어 있는 지문들, 도둑이 버리고 간 기타케이스, 등등 금방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증거들이 있어도 별 관심이 없다. 역시 과학수사는 영화에서만 보는 거로구나. 영화에서 보니까 뭐 돋보기 같은 걸로 바닥을 보고, 밀가루 같은 가루를 뿌려 지문을 찾아내고 하던데 다 뻥이구나.

 이 기타 말고 그 사이에 있던 기타 한 대와 기타 케이스가 없어졌다.
이 기타 말고 그 사이에 있던 기타 한 대와 기타 케이스가 없어졌다.안건모

사실 이 동네 CCTV 확인만 하면 그 도둑은 금방 잡을 수 있다. 시간은 21일, 금요일 저녁 5시 이후부터 그 다음날 토요일 아침이다. 그 시간대에 기타 케이스 두 대를 들고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잃어버린 게 기타만이 아니다. 월요일 아침에 나와 지난번 편집회의 때 남긴 자료를 찾다 보니 넷북이 없어졌다. 소니 사진기, 일꾼 책상 서랍에 있던 외장 하드 두 개도 없어졌다. 가격은 기타 82만 원, 케이스 대충 15만 원 정도, 카메라 살 때 든 가격은 80만 원 정도, 넷북 60만 원, 외장 하드 한 15만 원 정도? 합치면 252만 원이다. 그게 살 때 가격이지 지금은 다 팔아도 100만 원도 못 받을 거다. 아참, 금고에 들어 있던 돈 중에도 딱 1만 원만 갖고 갔다. 왜 다 안 가져가고 1만 원밖에 안 가져갔을까? 집에 갈 택시비?

 기타에 시리얼 넘버가 있다. 함부로 팔 수도 없는 기타다.
기타에 시리얼 넘버가 있다. 함부로 팔 수도 없는 기타다.안건모

추가로 잃어버린 물건을 신고하려고 다시 112에 전화했더니 사건이 마포서로 넘어갔다고 한다. 마포서로 전화했다. 왜 형사들이 안 오느냐고 물었다. 전화 받은 이가 대답하기를 어제 밤 근무라서 내일 아침에 온다고 한다. 어제 밤 근무면 그저께 또는 어제 와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 경찰은 이런 자잘한 절도 사건엔 이렇게 신경을 안 쓴다. 그저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자들 채증 사진만 찍고, 벌금 매기고, 잡아들이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다. 어디 두고 보자. 잡을 수 있는 도둑도 못 잡는다면 경찰 자격이 없다. 해경처럼 해산하라는 소리 안 듣고 싶으면 얼른 잡아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도둑은 어떤 놈일까? 추리를 해 봤다. 먼저 기타를 치는 자, 거기다 마틴 기타를 아는 자, 작은책 사무실에 한 번이라도 온 자. 누군지 짐작이 간다. 혹 진범이 따로 있을까 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한 명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 경찰이 못 잡으면 내가 몇 날 며칠 미행이라도 해서 잡는다. 얼른 갖고 와서 백배 사죄하라. 봐줄지 말지는 그다음 결정하겠다.

 창고에는 자기 기타 케이스를 버리고 갔다. 이상한 놈이다.
창고에는 자기 기타 케이스를 버리고 갔다. 이상한 놈이다.안건모

#작은책 #기타 #안건모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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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는 농사를 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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