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 갈 것 같아서..." 코미디 같은 재판

초록불일 때 횡단보도 건넜다는 이유로 550만원 벌금... 항소하겠습니다

등록 2014.11.27 11:48수정 2014.11.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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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의 티셔츠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의 티셔츠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10월 31일 나는 황당한 판결을 하나 받았다. 바로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넜다'는 이유로 도로교통법 위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사건은 작년 여름에 일어났다. 나는 '18대 대선 당선무효 운동본부(아래 당선무효)'에서 활동했다. 8월 5일 활동의 목적과 의의를 처음 알리는 기자회견부터 경찰들이 난입해서 퍼포먼스 용품을 뺏어가는 등 활동은 힘들게 진행되었다(관련기사 : 기자회견장 난입 경찰, '박근혜가면' 탈취).

이날은 상복을 입은 채 청와대 근처를 걸으며 '18대 대선 부정선거 논란으로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뜻을 알리는 퍼포먼스도 예정되어 있었다. 이 또한 경찰들의 막무가내 방해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퍼포먼스를 조금이라도 진행하고 경찰의 이유 없는 방해 행위를 널리 알리기 위해 4일 뒤인 8월 9일, 청와대 앞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난 뒤 신호등 신호에 맞춰 건너편 인도로 일제히 뛸 준비를 했다.

청운동주민센터 앞은 경찰들이 막고 있으니 재빨리 반대편 인도로 건너가 도보행진을 조금이라도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일제히 품에서 '도보행진 보장하라!', '기자회견 물품탈취 경찰의 불법행위 고발한다', '국가기관이 개입한 18대 대선 무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뛰어나갔다. 동시에 경찰들도 달려오더니 몸으로 우리를 막아 섰다.

졸지에 도로 한복판,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경찰들과 대치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우리는 구호를 외치면서 경찰들의 방해를 규탄했다. 그 순간 방패를 든 경찰들이 출동해서 우리를 인도 쪽으로 밀어붙였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고작 열명 남짓한 우리가 몇 배나 많은 경찰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행이 되었고, 경찰서에서 꼬박 48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8월 11일에야 풀려났다.

"청와대로 갈 것 같아서..." 코미디 같은 재판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의 기자회견을 방해하는 경찰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의 기자회견을 방해하는 경찰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당시 '박근혜 당선무효를 외치는 대학생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 시도를 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많이 나왔다. 기사 속 연행 사실 뒤에 이런 황당한 뒷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작년 12월 검찰이 우리를 집시법 위반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1월 14일에 약식명령으로 벌금이 선고되었다. 13명 대학생에게 내려진 벌금은 모두 550만 원이나 됐다. 나도 벌금 50만 원을 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횡단보도 한 번 건넜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수모를 겪었는데, 550만 원이 넘는 벌금까지 내라고? 새해벽두부터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접한 우리는 바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했다. 1월 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첫 공판이 3월 28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최종적으로 선고를 받은 것은 10월 31일이었다. 1월 14일에 약식명령을 받고 꼬박 열 달 동안 이 문제를 갖고 끙끙댄 셈이다. 경찰들의 과잉진압과 검찰의 어처구니없는 기소로 인한 피해라기엔 너무 길지 않은가?

죄목이 집시법 위반과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보니 법리상 다툼이 일어날 대목은 사실상 없었다. 쟁점은 황당할 정도로 유치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경찰과 대치한 것이 도로교통에 방해가 되었는가', '인도로 밀려난 뒤에 경찰에 항의한 것을 집회로 보아야 하는가', '그게 집회라면 그 집회는 불법인가', '집회가 얼마만큼 시끄러웠고 통행에 어느 정도 불편을 초래했는가' 따위였다. 검찰은 이 같은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도 입증한 것이 없었다.

재판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결국 최종선고에서도 약식명령이 그대로 인정되었다. 재판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코미디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증인신문이었다. 검찰에서 우리를 연행한 경찰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모두 우리에게 유리한 말들만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뿐인데 연행한 이유에 대해 경찰은 "갑자기 뛰어들 가니까, 아마 청와대로 달려갈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위협적인 물건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A4용지 같은 종이 쪼가리만 들고 있었다, 엠프나 확성기도 없이 생목으로만 외쳤다"고 했다.

검찰은 심지어 '가투(가두투쟁)' 영상이라며 영상증거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우리가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경찰들에 의해 횡단보도에서 밀려나가는 장면이 나오자, 판사는 영상을 다 보지도 않고 "횡단보도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네요"라면서 영상을 중단해버렸다.

지하철까지 따라온 경찰 "미행 아니라 퇴근 중"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대학생들의 피켓시위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대학생들의 피켓시위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열 달이나 끌어온 재판은 지루했지만, 재판 하나하나는 금방 끝났다. 4월 18일, 6월 27일, 10월 8일, 세 번에 걸쳐서 재판을 했는데, 그 중에 증인신문과 최후변론이 있던 10월 8일을 제외하고는 3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재판받는 대학생 중에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 역시 광주에 살아서, 재판이 있는 날이면 오전 6시에 서울로 출발해야 했다.

그리고 30분도 채 안 걸리는 재판을 끝내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야 했다. 고속버스에서만 8시간 가까이를 보내는데, 그날 하루는 온전히 버렸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게다가 대학생인 이상 수업을 결석해야 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이 억울한 상황이어도 재판까지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귀찮아하는데, 직접 겪고 나니 그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다. 게다가 '이렇게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을 바에는 똥 밟았다 생각하고 벌금을 내버릴까?'라든지 '괜히 나섰다가 이런 일도 겪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한 친구는 이렇게 지방에서 왔다 갔다 하는 차비만으로 이미 벌금을 냈겠다면서 어처구니없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후변론을 준비하면서 당시 우리의 활동과 경찰의 행동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본 검찰의 모습들을 복기해봤다. 이와 같은 괴로움과 후회를 느끼게 하려고 검찰이 우리를 기소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자기검열에 빠지게 하고 주저하게 만들기 위한 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소를 하고 끝까지 법정에서 싸우기로 했다. 그동안 법정공방을 벌이면서 '도로교통에 정말 방해가 되었는가', '주변 행인들의 통행에 방해를 주었는가'와 같은 변죽을 두드리는 다툼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싸워볼까 한다.

황당한 재판의 배경에는 '개인 사병화' 된 경찰이 있다

 지하철로 대학생들을 따라온 경찰
지하철로 대학생들을 따라온 경찰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나는 이 황당한 연행과 코미디 같은 재판의 본질은 경찰의 과잉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당선무효' 활동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겪은 일들이었다. 기자회견 도중에 경찰들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어서 도둑처럼 훔쳐간 기자회견 물품은 박근혜 대통령 가면이었다.

다른 사람 모두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데 유독 우리들의 1인시위만 막은 이유 역시 '피켓에 VIP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는 1인시위 도중에 어떤 차량이 지나가자 경찰들은 1인 시위자가 보이지 않게 그를 몸으로 둘러싸서 막았다. 나중에 차량이 지나가자 해산하는 식으로 '인간산성'을 쌓기도 했다.

기자회견 물품을 뺏느라 아수라장이 되자 경찰이 한 대학생의 멱살을 잡으면서 욕설과 함께 "골목으로 따라와"라고도 말했다. "활동 끝나고 멀쩡히 다닐 것 같냐? 네 집도 우리는 다 알아" 같은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실제로 촛불집회 끝나고 귀가하던 중 지하철에서 우리를 따라오는 사복경찰을 발견하기도 했다.

누군가 낮에 본 경찰이 지하철에 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무 역에서나 불쑥 내렸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내리는 '쇼'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도 우리랑 똑같이 지하철을 탔다가 문이 닫히기 전에 내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곧장 그 경찰에게 달려가 항의했다. 그 경찰은 자기는 그냥 퇴근 중이었고 우연히 방향이 같았다고 변명했다. 우리는 '그럼 먼저 퇴근하라, 우리가 다음 지하철을 타겠다'고 하자 그는 결국 우리를 보내주고 혼자 돌아갔다.

이처럼 경찰이 법적 근거도 없이 시정잡배처럼 행동한 배경에는 과거 군부독재 시절처럼 권위적인 통치행위를 하는 현 정부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일해야 할 경찰들이 정권의 '개인사병화'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애초에 국정원과 국방부 등의 국가기관들이 정치중립성을 잃고 개인에 충성해서 성립된 정권이 아닌가? 거기다가 우리는 국가기관이 개입된 18대 대선 무효, 즉 박근혜 대통령 당선 무효를 주장했으니 공권력이 우리에게 가한 행패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투쟁하려 한다.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넜다는 이유만으로 연행하고 벌금형까지 받은 이 사건의 황당함 뿐만 아니라 그 배경까지도 따져볼까 한다. 누군가는 우리들의 이런 행동의 의의를 알아주리라 믿는다.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대학생의 1인시위
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대학생의 1인시위18대대선당선무효운동본부

덧붙이는 글 김태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대선무효 #과잉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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