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 입구에 있는 올해 퀴어문화페스티벌 슬로건.
김예지
지난 10월 29일, 저녁 찬거리를 준비할 시간에 망원동 재래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휴대폰으로 길찾기 앱을 켜고 시장 중앙 길을 헤매다,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빨간 벽돌의 다세대 주택들이 이어졌다. 분명 길찾기 앱의 화살표는 이 근방에 도착지가 있다고 표시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재단이라는 단체이면, '번듯한' 간판이라도 하나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약속된 인터뷰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혹여 늦지는 않을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결국 재단에 전화를 했고, 상근 간사님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그토록 찾던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은 무심코 지나쳤던 그 빨간 벽돌의 건물 2층에 위치해있었다. 이런 익숙한 삶의 공간에 낯선 단체가 둥지를 틀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적소수자를 위한 비영리 재단이다. 2012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워크숍에서 '새로운 형식의 성적소수자 재단'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 그 시초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 그 단순한 상상은 비온뒤무지개재단으로 실현되었다.
재단 사무실에 들어섰을 땐 한 방송사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최근에 재단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꽤나 바쁜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려서야 사무실 내 성적소수자의 역사를 수집하는 아카이브 공간인 '퀴어락'에서 이신영(53·트랜스젠더 부모모임 대표) 이사장과 류홀릭(38·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이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단순한 아이디어로 성적소수자의 희망을 말하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이라는 이름이 예쁜데, 어떻게 지은 것인가요?이신영 : "무지개가 희망을 상징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성적소수자 인권 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는데 차별은 여전해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겠는 의미에요. 또 무지개가 다양성을 상징하잖아요.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타고난 자기만의 색깔로 빛나기를 바라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짓게 된 이름이에요."
- 앞서 말한 것처럼 성적소수자를 위한 국내 운동의 역사가 20년이 넘었어요. 그간 성적소수자를 위한 단순한 커뮤니티도 있었고, 운동을 하는 단체도 존재했어요. 그런데 모든 성적소수자를 아우르는 '재단' 형태의 단체는 처음 아닌가요?류홀릭 : "만들어진 지 15년 정도 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을 이어오다가 활동가들이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잖아요. 인권단체이지만 나라의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개개인의 성적소수자들이 돈이 없어서 학업 중단하거나 꿈을 포기하는 것과 같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재단이란 것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에요.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작을 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큰일이에요."
이신영 : "저도 아이의 성정체성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그냥 정신이 없었어요. 나중에야 성적소수자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나 가족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다른 성적소수자 아이들을 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성적소수자 단체의) 활동가들은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보수도 별로 없고,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일을 병행해야 해요. 그런데 성적소수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곳에 금전적 지원을 주려면 기부를 받을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해요. 재단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부를 받고, 그것을 꼭 필요한 곳에 배분하는 일입니다. (성적소수자) 단체는 그런 일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재단이라는 틀이 필요했어요. 기부를 하는 분들도 아무래도 재단이라면 믿고 기부를 하시고요."
성적소수자의 '삶'을 기반으로 한 지원 사업- 재단이 준비하고 있는 사업에는 성적소수자의 실생활에 밀접한 활동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특별히 눈길을 끄는 사업은 의료 지원, 장학 지원, 지역 지원인데요. 이신영 : "의료 지원은 성적소수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젠더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트랜스젠더는 신체적 수술을 경험하고, 호르몬을 투여하기 때문에 사실 건강관리가 평생 필요합니다. 의료적 비용 문제도 걸리지만, 성적소수자에게 우호적이면서 인권 감수성을 가진 의료진을 만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성적소수자들이 병원 진료를 받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성적소수자에게) 우호적인 의료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류홀릭 : "(지역 지원 같은 경우) 성적소수자들이 외계에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에요. (성적소수자는) 이 지역에, 어디에나 같이 있습니다. '성적소수자는 내 주변에 없다', '(성적소수자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지만 사실은 (성적소수자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마을 운동과 지역 운동 활성화, 그 안에 성적소수자가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필요해요. 종로에는 게이바가 많아요. 그래서 게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에 비례해 혐오 범죄도 많죠. 지역에서 같이 (성적소수자를) 받아들이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사회는 성적 소수자를 없는 존재로 보게 됩니다.
또 모든 (성적소수자) 운동들이 서울 중심, 수도권 중심이거든요. 사실 지금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깨달아도, 인터넷에 관련 정보가 많아서 크게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부모님이나 트랜스젠더는 앞으로 어떤 의료적 조치를 받아야 하는지, 상담은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정보를 얻으려면 한계가 있습니다. 매번 서울에 오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요. 따라서 (성적소수자에 대한) 지역 지원이 필요합니다."
- 다른 사업들은 내년부터 그 지원이 본격화 되지만, '이창국 장학 사업'은 이미 시작이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이신영 : "고 이창국님은 저희 돌아가신 아버님입니다. 살아계실 때 개인적으로 장학 사업을 하셨어요. 제가 장학 사업을 지원하게 된 것도 아버님의 뜻을 받은 것이에요. 저희 형제들도 이 재단을 만들 때 도와주었고요.
저희 가족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내 형제의 일이고, 내 조카의 일이니까요. 성적소수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없더라도 가족의 일이니까 (장학 지원을 통해) 마음을 보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거든요. 아버지가 아마 살아 계셨더라면, 정말 좋아해주셨을 것 같아요. 정말 잘한다고 격려해주셨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