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윤동주,장준하왼쪽부터 청년시절의 문익환,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 장준하는 비슷한 나이에 모두 숭실중학교에 다녔다. 문익환과 윤동주는 죽마고우였으며, 문익환과 장준하 역시 친구였다.
신민구
대가는 가혹했다. 윤동주는 불과 29세의 나이에 해방을 6개월 남겨놓고 생체실험의 의혹 속에 옥사했고, 장준하는 학병에 끌려갔다 탈출해 독립군이 되었지만 1975년 8월 약사봉 등산에서 의문사 한다. 윤동주와 장준하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친구였던 문익환은 1989년 반세기 동안 견고했던 분단선을 넘은 후 생의 마지막을 모두 통일운동에 바쳤다. 그러나 그 역시 1994년 1월 사망 후 통일운동의 분열이라는 한 맺힌 상황을 하늘에서 지켜봐야 했다.
점심 후 버스타고 가면서 비암산에 위치한 일송정을 보다. 그 곳에 있는 소나무는 항일투쟁의 상징물이기에 계획적으로 일본이 고사시켰다. 항일 독립 운동을 더욱 느낄 수 있는 선구자를 누구라 할 것 없이 함께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