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지 오래 돼야 친구? 그럼 새 친구는?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95] 朋

등록 2014.12.05 18:37수정 2014.12.0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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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붕(朋)은 갑골문에서 보듯 고대 화폐의 단위로 다섯 개, 혹은 두 개의 조개껍질을 한 붕(朋)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 漢典


"집에서는 부모에 의지하고 밖에 나가면 친구에 기댄다(在家靠父母,在外靠朋友)"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은 친구 사귐과 사회적 관계 맺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논어(論語)> 첫 구절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역호(有朋自远方来,不亦乐乎, 친구가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는 지금도 동아시아인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구절이며,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인들이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맞이하는 말로 활용되었다.

벗 붕(朋, péng)은 갑골문에서 보듯 고대 화폐의 단위로 다섯 개, 혹은 두 개의 조개껍질을 한 붕(朋)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나의 끈에 엮인 조개껍질처럼 늘 함께 걸려 있는 가까운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소전체에서는 날개 우(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봉황이 날자 뭇 새들이 따라 나는 것에서 친구와 붕당(朋黨)의 의미가 생겼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벗 붕과 함께 친구를 나타내는 한자로 벗 우(友)가 있는데, 붕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동학(同學)의 의미이고, 우(友)는 뜻을 함께 하는 형제나 동지(同志)의 의미로 파악된다. 붕이 새의 날개처럼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한다면 우는 늘 도와주는 손과 같은 존재로 곁에 있는 셈이다.

친하게 오래 사귄 벗을 이르는 '친구(親舊)'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한자어이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새로운 친구'라는 말이 모순형용이 되기도 한다. 친구라는 말이 있기 전에는 제이오(第二吾), '제2의 또 다른 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아주 친한 친구를 '자기사람(自己人)'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인디언들은 친구를 '내 슬픔까지 등에 지고 가는 사람'으로 정의한다고 한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떠올리게 한다. 춘추시대 5패 중의 하나였던 제(齊) 환공의 명재상이던 관중에게 포숙아는 그의 모든 슬픔을 등에 지고 간 진정한 친구였다. 관중은 그런 포숙아에 대해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 준 것은 포숙아였다(生我的是父母,了解我的人可是鲍叔牙呀)!"고 고백했다.

"친구 하나가 생기면 또 하나의 길이 생긴다(多个朋友多条路)"고 한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조개껍질처럼 한 인연으로 묶여, 새의 날개처럼 곁에서 늘 힘이 되어주는, 나의 슬픔까지 등에 업고 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영혼을 교감할 수 있는 그런 친구도 얻게 되지 않을까.
#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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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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