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당한 공무원... "배상금 아깝다는 박근혜 정부"

[인터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 윤영전씨

등록 2014.12.10 18:53수정 2014.12.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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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로 몰려 22세의 나이에 학살당한 윤영철씨 ⓒ 윤영선

1949년 3월 24일, 현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 광주경찰서 부근. 당시 면사무소 직원이던 22세 윤영철(1928~1949)은 재판도 받지 못하고 자국 경찰에게 머리에 2발 심장에 1발, 총 3발의 총을 맞고 사망한다. 전시도 아닌 나라에서 어떻게 공무원이 자국 경찰에게 총살 당하는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그것도 '거대한 건국의 아버지'라는 이승만 정권하에서.

윤영철은 해방 직후인 17세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에 가입, 활동했으며 이후 분단을 반대하는 통일 운동에 참여했다. 1948년 여순사건 이후 21세의 윤영철은 '좌익활동자'로 수배되고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닌다. 그러다 1949년 2월 초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광주경찰서에 감금된 채 모진 고문을 받는다. 그리고 한 달 반 후인 1949년 3월 24일, 22세 윤영철은 경찰에게 총살 당한다. 

그리고 지난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을 윤영철이 "좌익 혐의로 광주경찰서 경찰에게 사살된 사건"으로 진실 규명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5월 21일 서울고등법원도 이 사건을 "경찰 등 국가 권력에 의해 집단적·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 행위"로 판결하였다.

국가 폭력의 억울한 희생자 윤영철의 친동생 윤영전(1941~) 선생은 74세가 되도록 형님의 억울한 학살에 대한 진실 규명을 위해 지난 60여 년의 세월을 동분서주, 풍찬노숙했다. 그러나 요즘 윤영전 선생은 너무나 갑갑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가족인 윤영전 선생의 한 많은 사연을 들어봤다. 다음은 윤영전 선생과 지난 11월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60여 년간 집안이 풍비박산 났는데... 8천만 원도 아깝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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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전 선생 ⓒ 윤영전


- 1949년 3월 24일 형님 윤영철(당시 22세)이 당시 대한민국 경찰에 의해 학살 당했다. 그리고 59년 만인 지난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윤영철이 재판도 없이 (대한민국 경찰의 손에) 총살을 당해 운명한 사실을 규명했다. 당시 소회가 어땠나? 또 그 후 국가를 상대로 '윤영철 희생 사건'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013년 7월 서울중앙법원의 1심 판결이 있었는데?
"먼저 '어쩌면 내 생전에 60년이나 넘은 과거사가 밝혀질까?' 의문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55년 만에 평화적 정권 교체와 진보 정권의 재창출이 있었다. 그리고 과거사 정리법이, 비록 누더기 법이었지만, 겨우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당시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이제라도 형님을 비롯해 국가 폭력으로 죽임을 당한 분들의 진상이 규명되고 명예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뛰기도 했었다.

당초 과거사법에서, 우리 민간인 학살 유족들은 배보상건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치 돈에 비중을 둔다는 비난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학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되면 자연히 국가에서 배상도 따를 줄 알았다.


그런데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 규명 결과에 의지해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법에 소를 제기하고서 1심 판결을 받았는데 그 결과가 너무도 황당했다. 1949년 우리 형님이 '빨갱이'로 누명을 쓰고 국가 폭력으로 학살 당하고 나서 지난 60여 년간 우리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국가배상이 고작 8000만 원 이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 그래서 그 후 국가를 상대로 항소를 하셨고, 지난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판결이 있었다. 그 결과와 주요 판결 내용은 무엇이었나?
"당초 1심에서 1년여를 끌더니 항소심 2심에서도 늦게야 판결이 났는데 당초 1심의 판결내용 그대로 적용하여 판결을 내렸다. 당초 배상을 바라보고 소를 제기한 것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건에 비해 형평성이 너무도 맞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마저도 부당하다고 오히려 유족들을 상대로 대법에 상고를 했다."

- 그런데 올해 8월에는 대법원에서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상고가 기각되었는데 그 이유는?
"정부가 상고한 내용은 1심보다도 더 적게 유가족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당초 최저 배상금보다 적게 지급하는 것은 안 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가 막혔다. 지난 1949년 형님이 '빨갱이'로 몰려 국가 폭력으로 학살당하고, 그 후 부모님과 형님들이 연좌제로 몰려 온 집안이 지난 60여 년간 말 못할 고통과 고난을 받았다. 그런데도 보상금 8000만 원이 많다고 유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박근혜 정부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하급심에서 배상 판결이 여러 가지로 나와 많은 액수의 판결대로 지급하면 나라 재정이 거덜난다고 하면서 하급법원재판결정을 조정하는 등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검찰에서도 중구난방 하더니 결국 최저 배상 판결을 유도했다. 이래서는 나라의 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민간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을 푸대접하는 정부의 결정에 기가 차다. 인권국가, 민주국가로서 나라의 정체성을 살리는 문제인데도... 너무 어이가 없다."

- 윤영철 형님은 어떤 분이셨나? 형님의 잊히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돌아가신 영철 형님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동학 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 집은 양반 집안이었지만 형님은 당시 머슴 하인들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고 사랑방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도 했다. 조국 해방을 염원하던 중 건준에 가입해 당시 광주군의 서창 대촌 효지면 등 4개면 조직책으로 활동하다 건준이 해산되어 지하 조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청에 근무하다 면사무소로 좌천되어 1948년에는 10월 여순사건에 지하 조직책으로 몰려 수배를 당했고 결국 1949년 2월초 경찰에 붙잡혔다. 똑똑하고 잘생긴 당시 22살의 형님은 결혼도 미룬 채 통일조국을 원했던 청년이었지만 경찰에 의해 재판도 없이 총살 당했다.

아주 어릴 적에 형님이 자전거를 태워주었고 동생들을 참으로 귀여워 해주었다. 형님은 어린 나의 우상이었고 형만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다가 그만 경찰에 붙잡혀 1달 반 동안 갖은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결국 경찰이 쏜 3발의 총탄에 죽임을 당했다. 당시 나는 나이가 어렸지만 너무도 슬프고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마구 죽일 수 있는 세상이고 나라인가!'하면서 막 울었다.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국가 폭력에 의한 우리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었다."

- 부모님이 받은 충격과 고통이 무엇보다도 크셨을 텐데.
"부모님은 물론 형님은 양할머니의 효손이었고 희망이었다. 형님이 빨리 결혼해서 손자 증손을 안겨 달라고 하셨다. 형님은 '좋은 세상이 오면 그때 장가가 손주를 안겨드리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형님이 학살 당한 모습과 현장을 보시고 결국 할머니와 어머니는 혼절하고 말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날마다 시오리 길 묘를 찾아 통곡하셨고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리며 곧 손자와 아들이 집에 들어올 것만 갔다고 헛소리를 하곤 하셨다. 집안의 기둥이요 8남매 맏이였기에 충격이 크기만 했다. 그분들 돌아가실 때까지 형님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는 시조와 창으로 여일하시고 오직 분단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대를 원망하셨다."

"100만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 국가정체성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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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전 선생 ⓒ 윤영전


- 과거사정리법 제정과 진실화해위원회 설립 과정에 참여하신 과정을 듣고 싶은데?
"내 머릿속에는 분단 때문에, 전쟁 때문에 8000만 동포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항상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100만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국가의 정체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전국 범국민위원회 감사로 일하면서 이이화 선생, 강정구 교수, 김동춘 교수 등과 함께 여의도 칼바람을 맞으면서 과거사법 입법 활동에 함께했고 그래서 누더기법이나마 결국 국회에서 제정되었다.

진실화해위가 구성되고 내가 진실규명 신청을 총 8명 했는데 그 중 5분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이 규명되었다. 형 영철과 외삼촌, 당숙, 우리집 머슴과 마을 청년 등에 대한 진실이 규명되었다. 그런데 머슴과 마을 청년은 그 후손들을 찾을 수 없어 그만 진실화해위에서 진실 규명한 확인서를 내가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또한 기가 막힐 일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 의용군에 끌려간 당숙 두 분 중 한 분은 납북되었고 또 한 분은 행방불명되었다. 이처럼 분단으로 인해 아픔을 당한 이웃들이 내 가까운 주변에 있어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 범국민위원회 활동 외에도 광주유족회 준비위원회 회장과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광주유족회 준비위원회는 무슨 활동을 하는가?
"범국민위에 있으면서 광주유족회 준비위를 만들었다. 광주유족회 준비위는 진실 규명이 되고 난 유족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내년에 정식으로 광주유족회가 창립될 예정이다. 이때에 창립총회, 추모제, 위령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광주 광산 지역은 6·25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초 민간인 500여 명이 국가 폭력에 의해 집단 학살 당한 지역이다. 내 당숙도 그 때 억울하게 학살 당했고, 당숙모가 학살 현장을 찾아가 머리와 얼굴이 없어 신발로 확인한 당숙의 시체를 찾아왔다. 그 후 당숙의 시신을 마을 육모정에 안치하고 집에서 3일장을 지냈는데 송장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1949년 나의 형님에 이어 1950년 7월 중순 비참한 당숙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나는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올해의 광주 광산 지역 민간인 학살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와 위령제를 지냈는데 500여 명 희생자 중에서 겨우 40여 명만 현재 진실 규명이 되었다, 나머지 460여 명 희생자 유가족들은 진실위에 진실 규명 신청도 하지 않았다, 신청 기간이 짧아서 신청을 못한 분도 있지만 또 '빨갱이' 좌익 논리에 빠질까봐 두려운 나머지 진실 규명 신청을 기피한 분들도 많다. 100만 학살 희생자 가운데 겨우 몇 천 명밖에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안 된 우리나라가 인권 선진국으로 갈 길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또 대법원은 진실 규명이 된 배상 문제도 아직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참, 답답할 뿐이다."

-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가족의 한 분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국회 그리고 우리 사회에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함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미진한 과거사 정리를 외면하고 100만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에도 뒷짐을 쥐고 있는 모습이 너무 밉다.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부가 나몰라 하는 작태는 민주 국가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급히 과거사 정리를 위한 특별법을 대통령과 정부가 스스로 제정하여 67년 전 억울한 영혼의 한을 달래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 또한 여야 정쟁만을 일삼지 말고 과거사 정리에 대한 입법 활동을 통하여 과거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함으로써 국회가 할 일을 다 하여야 한다.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부끄러운 일인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를 살리는 길이 우리사회가 추구할 정도의 길이라 생각한다. 또 이 길이 남남 갈등은 물론 이념갈등도 해결하고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윤영전 선생은
윤영전 선생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전국 범국위원회 활동을 통해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법 제정에 일조했으며 현재 광주유족회 준비회장과 고문으로 있다. 그는 국가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재판도 없이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사건에 대한 국가의 진실 규명과 과거사 정리 활동의 재개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저서에 <못다핀 꽃>, <도라산의 봄>, <平和,그 아름다운 말>, <강물은 흐른다>, <因緣, 아름다운 만남> 등이 있다.

#윤영선 #윤영철 #진실위 #박근헤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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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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