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진행된 무상보육 재정책임 회피 정부 규탄 기자회견 당시 모습.
참여연대
우리가 무상보육제도라고 알고 있는 보육료지원제도와 가정양육수당제도가 소득기준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시행된 지 3년차를 맞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민의 세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이들 제도의 골자는 0세에서 만 5세에 이르기까지 영유아의 보육과 관련하여 부모가 '추가적'인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영유아보육법에 따른 국공립, 사회복지법인, 법인·단체 등 직장, 가정, 부모협동, 민간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5세 이하 영유아의 경우 가구의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보육료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외에도 장애아 보육료, 다문화 보육료, 방과후 보육료, 시간연장형 보육료 등 다양한 보육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유치원, 종일제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양육 아동(전 계층 만 5세 이하)에 대해서는 나이에 따라 월 10만 원에서 20만 원까지의 가정양육수당을 현금지급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2014년 예산 기준으로 이들 제도의 운용에 들어간 돈은 보육료 지원에 3조 3천억 원, 가정양육수당 지급에 1조 2천억 원이 투입되었다. 이 금액의 합계는 같은 해 전체 보건복지부의 아동청소년관련 전체 예산의 85%를 넘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대선 시기에 주요한 후보들이 누구랄 것 없이 경쟁적으로 도입을 약속했던 소위 '무상보육정책'이 시행 3년차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 요란하게 시작한 만큼 전 국민의 기대에 찬 눈길이 쏠리기도 했던 무상보육 정책은 안타깝게도 시행초기부터 해마다 몸살을 앓아왔다.
무상보육제도 전면도입 첫 해였던 작년에는 무상보육을 위한 재정분담율과 그 비용규모의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면서 소위 '보육대란'에 대한 우려를 키운 바 있다. 결국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어렵사리 추경을 편성하여 작년 한 해를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서울시를 비롯하여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지자체의 경우는 지방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김으로써 결국 현 세대 보육의 비용을 다음 세대에 빚으로 떠넘기는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그러더니, 2015년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올해 말에 들어서는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보육지원 예산을 교육지방자치단체, 즉 시도교육청에 떠넘김으로써 또 다시 지루한 싸움을 예고하였다. 교육부가 신청한 누리과정 예산 2조 2000억 원을 기획재정부가 2015년 예산편성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올해의 무상보육 예산전쟁 2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올해의 무상보육 싸움은 그 상대가 작년의 시도지사에서 올해 시도교육감으로 바뀌었을 뿐 작년의 싸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이 싸움의 본질은 정책주체로서의 정부가 마땅히 안고가야 할 책임을 애써 회피하려는 데에 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돌봄 및 교육에 대한 공공 책임성의 실현'이라는 보육정책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 시행에 필수적인 재정 문제를 정부가 직접 책임지려하지 않고 상대 선수를 바꿔가면서 계속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영유아 부모-취학아동 부모 문제인양 포장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심지어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대립시켜서 수혜집단들 사이에 분란을 유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상보육 재정책임성의 문제를 보육의 당자사인 영유아의 부모들과 급식의 당사자인 취학아동 부모들 사이에서 해결해야할 문제인양 포장했다.
정작 정부가 져야할 재정책임성을 회피하려는 꼼수를 동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형국이다. 이와 같이 진행되는 박근혜 정부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정책은 작년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기준보조율의 현실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것과 상당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